닫히지 않는 문
“하율이 데리고 먼저 가. 나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
새 욕실 도기를 설치하려면 먼저 낡은 도기들을 철거해야 했다.
김대리는 싱크대 사건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욕실 철거로 날려버릴 심산이었다.
재활용할 게 없는 철거 작업은, 망가뜨려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훨씬 편했다.
부서진 변기를 들어올릴 때는 이상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하는 김에 타일까지 뜯어낼까…’
싱크대를 무너뜨린 일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는데,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새벽부터 나온 보람이 있으려면 뭐 하나는 확실히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오래된 변기와 세면대를 철거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낡은 거울을 떼어내는 일도 조금 긴장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멘트 벽에 붙여놓은 타일을 제거하는 작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김대리는 충전식 전동 드라이버의 드릴 기능으로 타일 사이의 메지와 모르타르를 뚫고,
드라이버와 망치로 타일을 깨어 나갔다.
쉽게 떨어지는 타일도 있었지만 드릴조차 들어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힘은 죽도록 들었지만 진도는 쉽게 나가지 않았다.
두 시간 만에 화장실 벽은 폭격을 맞고 무너지다 만 집 처럼 되었고, 김대리는 셀프 철거를 포기했다.
노가다는 장비빨이라는 옛 격언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밤 열시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뜯어낸 변기와 세면대를 질질 끌며 분리수거장으로 옮겼다.
깊은 신음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너무 무거웠다.
거울을 내려놓다 깨뜨렸을 때는 온갖 욕설이 다 튀어나왔다.
이미 밖은 깜깜해져서 조각난 거울을 치울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적당히 한곳에 모아 놓고 집으로 돌아가 죽은 듯이 골아떨어졌다.
“오빠, 괜찮아?”
희윤의 걱정스런 물음에 김대리는 눈을 떴다.
온몸이 몽둥이로 두들겨맞은 듯 욱신거렸다.
“으음..응”
“오빠 밤새도록 헛소리하고 끙끙 앓았어. 이렇게 해서 다 할 수는 있겠어?”
김대리는 끄응 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못하는 일도 있겠어. 그래도 일단 오늘까진 해 보자.”
현장에 도착해 깨진 거울 조각을 치우고 있으려니 미리 주문해 놓은 변기, 세면대 같은 도기와 거울, 그리고 백시멘트 등 부자재가 도착했다.
인터넷에는 셀프 설치 후기가 풍부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새하얀 변기를 끌어안고 뒤뚱거리며 호실로 들어간 김대리는,
형언할 수 없는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오빠, 이게 무슨 냄새야?”
냄새에 민감한 희윤이 코를 싸쥐고 물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의 근원을 찾아가 보니,
범인은 바로 어제 변기를 뜯어내는 바람에 노출되어버린 오수관이었다.
정상적인 욕실이라면, 오수관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변기 내부의 U자형 파이프 안에 채워진 물 덕분에 완벽히 차단된다.
지금 김대리가 셀프로 파괴해버린 욕실에는 정화조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막아줄 방어막이 전혀 없었다.
“빨리 변기를 설치해야겠어.”
놀랍게도 변기 설치는 한방에 잘 되었다.
오수관에 정심을 딱 들어맞도록 잘 끼워넣었고,
수도관을 연결해 탱크에 물을 채운 뒤 레버를 누르자 시원하게 물이 내려갔다.
기적처럼 물이 새지도 않았고, 고약한 냄새도 사라졌다.
“오빠, 좀 하는데?”
“원래 내가 어렸을적 꿈이 과학자였다고. 로보트 만드는 과학자.”
희윤이 쪼그려앉아 백시멘트를 개어 변기 주변을 마감하는 동안,
김대리는 세면대를 설치했다.
세면대를 고정시킬 앵커 볼트를 박느라 애를 먹기는 했어도,
어찌어찌 세면대를 벽에 고정시키고 배관을 연결할 수 있었다.
세면대에 달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고 배관으로 무사히 흘러나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는 이미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구석에 서 있던 희윤이 낮은 목소리로 김대리를 불렀다.
“오빠…”
욕실 한 구석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김대리를 바라보는 희윤을 보자,
김대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 왜 희윤아?”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화장실 문이 닫히질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