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419]

직접 할 일과 맡길 일

by Kema

"미안해 희윤아…”



이틀 연속 사고를 친 김대리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온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무너져 내린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정하자.”

희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오빠 말대로 우리는 직장인이야.

주식 투자할 때도 회사 일에 영향 없게 하기로 했잖아.

건물 수리하는 일도 그렇게 하자. 이렇게 몸 다쳐가면서 무리하면… 계속 못해.”


똑부러지는 말에 김대리는 더욱 할 말이 없었다.

희윤은 그런 김대리를 차분히 바라보다 가만히 안아주었다.


김대리와 희윤은 작업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직접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 직접 할 수 있는 일 : 페인트칠, 문 손잡이 교체, 도어락 설치, 스위치/콘센트 교체

- 직접 할 수 없는 일 : 타일 및 도기 설치, 도배/장판, 싱크대 철거 및 설치 등



직접 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자 마음이 가벼워졌고,

공정 순서도 더욱 명확하게 짤 수 있었다.


희윤이 펜을 들고 일정을 적어나갔다.



- 1일차 : 페인트 작업 (문 손잡이 및 낡은 도어락 제거 후) + 싱크대 철거

- 2일차 : 현관, 주방, 욕실 타일 설치

- 3일차 : 욕실 도기 및 싱크대 설치

- 4일차 : 도배/장판

- 5일차 : 문 손잡이, 조명, 도어락 설치 및 스위치/콘센트 교체. 마무리 청소.







“자 어때? 이렇게 하면 1주일 안에 마칠 수 있어.”

희윤이 귀에 펜을 꽂은 채 팔짱을 끼고 말했다.


“대단하다 희윤. 멋지다 내 마누라.”

김대리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희윤의 볼을 꼬집어 주었다. 하율이도 덩달아 엄마 최고를 외쳤다.


“그럼 내가 작업자분들 전화해서 스케줄 잡을게.”

끝까지 믿음직스런 희윤이었다.






페인트를 칠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다행히 상대적으로 쉽게 요령을 익혀나갈 수 있는 기술이었다.


김대리와 희윤은 하루 종일 페인트를 칠하면서 상당한 깨달음을 얻었다.


하루가 끝날 즈음에는 체리색 몰딩과 문이 크림톤의 하얀색으로 바뀌었고,

방 분위기도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페인트는 한 번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었다.


쓰윽 칠하면 원하는 색이 나올 것 같았는데, 얼룩덜룩 흉한 색이 나와 망한 게 아닌가 싶었다.


조급한 마음에 페인트를 듬뿍 찍어 다시 한 번 덧칠했지만,

페인트만 이리 저리 밀려다니고 군데 군데 뭉친 페인트가 덩어리져 흐르는 참사가 일어날 뿐이었다.


“오빠, 일단 말리고 보자.”

희윤이 턱에 하얀 페인트를 묻힌 채 말했다.


마치 산타클로스 수염 같은 모습에 김대리는 웃음이 터져나왔지만,

이내 자신도 똑같은 꼴일 걸 알고는 입을 다물었다.


최대한 얇게 여러 번 펴바르라는 조언은 정확했다.


처음 펴 발랐을 때는 실패한 초등학생 그림 같은 모습이었는데,

두 번 세 번 말리고 덧바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기존의 체리색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오 이제 그럴 듯 한데?”


김대리가 자신이 도맡아 칠한 화장실 문짝을 감상하며 흐뭇하게 말했다.


몇 번 칠하다 보니 어디에 롤러를 쓰고 어디에 붓질을 해야 할 지도 감이 왔다.

부드러운 흰 빛으로 바뀐 문은 마치 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뒤는 전문가들의 차례였다.


연륜이 있어 보이는 작업자 분들은 빠른 속도로 김대리가 망쳐 놓은 싱크대와 욕실을 새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타일을 정교하게 재단해 이어붙이고, 물이 배수구로 흐르도록 경사를 잡아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김대리는 차라리 일찍 사고를 치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묵묵히 자재를 나르고, 작업자들이 떠난 현장을 청소하는 일이 김대리에게 더 맞았다.


도배와 장판까지 끝나자 방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낡은 때가 낀 어두운 체리색의 칙칙하던 방이, 깔끔한 화이트톤으로 화사해졌다.

오래되어 깜빡이는 형광등을 밝은 LED로 바꾸고,

노랗게 색이 바랜 스위치와 콘센트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김대리와 희윤은 완벽하게 탈바꿈한 방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세월에 눌려 우중충했던 방이,

지금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하얀 벽, 깔끔한 장판, 화사한 조명 아래에서

둘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았고, 팔은 더 이상 들어올릴 수 없었지만,

김대리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처음으로, ‘이 건물이 내 것이다’는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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