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420]

방을 채우다

by Kema

예쁘게 고쳐진 방은 금새 임자를 찾았다.


방을 보러 온 젊은 직장인은 연신 미소를 띄며 만족해했다.

중개인도 집이 몰라보게 예뻐졌다며 김대리 부부를 연신 추켜세웠다.



‘사장님, 방 보신 분이 계약 하신다고 하네요.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중개인에게서 온 문자에는 김대리가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대리에서 사장이라니. 김대리는 웃음이 나왔다.






첫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는 날,

김대리는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건물 근처 부동산으로 향하는 김대리의 기분은 묘하기 짝이 없었다.


부동산 계약은 이전에도 몇 차례나 경험했지만, 자신이 주인으로 서는 계약은 처음이었다.


문득 오 년 전, 신혼집 원룸 전세 계약을 하던 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때 자신의 눈에 임대인은 얼마나 커 보였던가.



처음 희윤과 통장을 합치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김대리의 가슴은, 처음 신혼집을 계약하던 그 날보다 더 크게 두근대고 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방을 보러 왔던 앳된 직장인이 부모님으로 보이는 부부와 함께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약속시간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김대리는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첫 임차인의 부모님은 김대리 부부보다 열 살 이상 연배가 많아 보였다.

이제 다섯 살인 하율이의 나이를 생각하니 자연스러웠다.

사회 초년생 딸이 자취방을 구하는 게 미덥지 않아 부모님이 같이 오셨으리라.


하율이도 언젠가는 커서 방을 구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앞에 마주앉은 가족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주인 분이 젊으시네요.”

임차인의 어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혹시 근처가 위험하거나 하진 않지요?”


“네, 어머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희 건물 바로 뒤쪽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위해시설이 못들어오고,

옆은 아파트, 또 건너편에는 파출소도 하나 있어서 아주 안전합니다.

근처 도보 거리에 있는 수변공원도 길게 잘 조성이 되어 있어 산책하기도 아주 좋고요.”


연습한 것도 아닌데 건물의 장점을 술술 설명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만큼 건물에 애정을 갖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딸자식이 영 못미더워서..”


아버지는 옆에 앉은 딸을 바라보며 마음이 풀린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못 미덥다는 말을 들은 딸자식은 아버지에게 삐쭉 입을 내밀더니 이내 소리를 죽여 쿡쿡 웃었다.







김대리가 안심시켜 드린 덕분인지, 계약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계약금이 입금되자 진짜 임대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힘들여 고친 방을 환한 미소로 바라보던 임차인과,

자신의 설명에 마음을 놓고 딸을 맡기던 부모의 표정이 김대리의 눈앞을 교차하며 지나갔다.


김대리는 가슴 깊이 뜨겁게 차오르는 커다란 보람과 행복감을 느꼈다.


지하철역을 향해 걸으며 김대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계속 나아가 보자!’



아무 것도 먹지 못했지만, 김대리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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