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의 나침반 - 재무제표
한 달에 한 번, 나와 아내가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어떤 달은 마음 가득 기대를 품고, 어떤 달은 무심히 기계적으로 하지만,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조금 이를 때도, 조금 늦을 때도 있지만 월급날이 넘어갈 즈음이면 반드시 한다. 벌써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그건 바로 우리 가족의 재무제표 작성이다.
재무제표는 특정 시점의 자산 상태를 한 눈에 보여주는 재무상태표(BS, balance sheet)와 일정 기간의 수익과 비용을 보여주는 손익계산서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가정에서 흔히 쓰는 가계부와 비교하자면, 손익계산서가 가계부와 가장 가깝고, 재무상태표는 수입과 지출 뿐 아니라 투자와 대출의 결과까지 반영한 '재무 건강 상태표'라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 작성하는 재무제표는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지만, 우리가 만드는 건 훨씬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신혼 초에는 기재할 항목도 거의 없었다. 자산 항목에는 전세금 구천, 통장에 있는 현금 얼마가 전부였고, 부채에는 회사에서 한도까지 받은 무이자 전세자금 천만원이 다였다. 엑셀로 두어 줄이면 끝나는 표였다. 그럼에도 매 달 이 초라한 표를 작성했던 이유는,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매달 어떻게 변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월급에 기대어 살지 말자'는 다짐을 했을 때, 내 목표는 단순했다. 10억을 모으는 것.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10억 정도 모으면 편안히 은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원금이 10억 있으면, 은행 금리만 생각해도 4천만 원 정도는 이자로 나오니 괜찮겠네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자에 세금이 얼마나 붙는지,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헷지할지에 대해서는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10억'이라는 숫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를 떠난 나를 지켜줄 든든한 성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은 순자산의 규모 만큼이나 얼마 만큼의 현금 흐름이 나오는지, 관련된 리스크는 얼마나 큰지, 세금은 얼마나 붙는지, 환금성은 어떤지 등 여러 가지의 추가적인 고려 사항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땐 10억이라는 숫자 그 자체가 목표였다. 부채는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재무제표 상의 현금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순자산이 조금씩 늘어 가는 재미에 깨가 쏟아졌다. 속도는 더뎠고, 10억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알량한 재무제표를 만드는 시간이 마치 비밀스러운 즐거움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도 빼놓지 않고 매 달 재무제표를 작성한다. 조금 더 복잡해지고 고려할 항목들도 많아졌지만, 현재의 자산 상태를 파악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도구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자산을 늘리고 싶다면 반드시 재무제표를 작성하라. 현재 상태를 모르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