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422]

쌓여 가다

by Kema


"후아. 오빠도 다 끝나가지?"


화사한 화이트톤으로 바뀐 거실 겸 주방을 청소하며 물었다.

새로 단 주방 조명이 희윤의 머리 위에서 예쁘게 반짝였다.


"응 나도 거의 다 됐어."

방 안에서 쪼그린 채 콘센트를 교체하던 김대리가 힘을 주어 전선을 '툭' 하고 잘라내며 대답했다.


"우리 이제 제법 하는 것 같아."

"그러게. 벌써 네 개 째 방이지?"






온갖 사고를 치며 한 달 가량이나 끌었던 첫 번째 방은 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이후 방들은 공정에 체계가 잡히면서 톱니바퀴처럼 척척 굴러가기 시작했다.



물론, 김대리가 사고를 저지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설프게 설치한 도어락이 작동이 되지 않아 열쇠업자를 부르기도 했고,

석고 보드에 앙카를 쓰지 않고 조명을 달았다가, 고정 볼트가 쑥 빠져 버리기도 했다.


다행히 전선이 버텨 준 덕택에 임차인의 머리 위로 조명이 떨어지는 대참사는 피했다.

서둘러 현장으로 달려간 김대리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거 안전한거 맞아요?"


팔짱을 낀 채 못미더운 눈으로 바라보는 임차인 앞에서,

공부해 간 앙카 구조를 직접 설명하며 절대 빠지지 않는다고 안심시킨 후 재설치를 하기도 했다.






이번 집수리는 특히 달랐다.


직장인답게 단 하루의 휴가도 쓰지 않고, 오로지 야간과 주말만 활용해 공사를 끝냈다.


퇴근 후 밤 시간에 김대리가 페인트칠을 하고,

낮에는 업자들이 차례로 타일, 도기, 도배, 장판을 완성했다.

주차장에 도착해 있는 타일이며 시멘트 같은 자재들을 낑낑거리며 옮기는 것도 퇴근길에 할 일이었다.


희윤은 하율이를 보면서 자재 주문과 일정 관리, 작업자 연락까지 도맡았다.


주말에는 업자들이 희윤이 골라 놓은 싱크대와 쿡탑·후드를 설치할 때,

둘은 직접 도어락을 달고 조명을 교체하며 화사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희윤은 입주 청소를 하고,

김대리는 콘센트와 스위치 전부를 새것으로 바꾸었다.






"청소 많이 힘들지?"

"그래도 이게 십만 원 짜리야. 일당은 나오는 셈이지."


청소를 직접 하려는 임차인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희윤이 아이디어를 내어 ‘청소비 10만 원 공제 조건’을 계약서에 넣은 것이다.


입주자는 청소 업체보다 싼 비용에 새집처럼 깨끗한 집에 들어오고,

퇴거 시에도 따로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임차인도, 임대인도, 모두가 만족하는 똑똑한 조건이었다.






예쁘게 고친 집들은 빠르게 임대가 나갔다.


처음에는 김대리와 희윤이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중개를 부탁해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들로부터 먼저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둘은 보증금과 월세 비율도 유연하게 조정해 주었다.

예비 임차인 중에서는 보증금을 좀 더 내고 월세를 낮추려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월세가 올라가더라도 적은 보증금을 맡기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대리와 희윤은, 1년 치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예비 임차인들의 요구에 최대한 맞추어 주는 방식으로 건물을 운영해 나갔다.


보증금이 낮아지면 월세가 늘어나서 좋았고,

보증금이 많아지면 다음 방을 더 빠르게 월세로 전환할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싸게 ‘깎아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대업은 결국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 계약이 핵심이다.

싼 가격만 고집하는 임차인은 좋은 고객일 확률이 낮았다.

김대리와 희윤은 임대업에서도 마케팅 못지않게 ‘디마케팅’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었다.


둘은 최선을 다해 좋은 품질의 주택을 제공하면서,

적정한 가격을 제시하고 유연하게 조건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깎자는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김대리와 희윤이 건물을 운영한 지도 어느덧 몇 년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택 임대 시장의 상황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입주자를 채우지 못해 한동안 방을 비워두던 시기도 있었고,

반대로 빈 방이 없는데도 임대 문의가 빗발치던 시기도 있었다.






김대리는 회사에서 은행을 상대하는 업무를 했던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렸다.


한창 업계가 호황이고 회사가 잘 나가던 때,

은행들이 거래를 늘리려고 안달을 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분위기에 취해, 한 과장이 은행 담당자들에게 거들먹거리며 무례하게 대했다.


하지만 세상은 금세 바뀌었다.


금리가 오르고 자금 사정이 빡빡해지자, 이제는 회사가 은행에 머리 조아리며 연장을 부탁해야 했다.

그 무례했던 과장은 결국 무릎을 꿇다시피 했다. 다행히 은행은 대범하게 넘어가 주었지만, 김대리는 그 장면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 기억 덕분에, 그는 임대업을 하며 만난 부동산 사장님, 철물점 주인, 분리수거 관리인, 공사 업자, 거래처 누구에게든 늘 정직하고 예의 바르게 대했다.


언제까지나 잘 될 것 같은 때도 있었다. 또 반면에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시기도 있었다.

김대리와 희윤의 운영 원칙과 주변을 대하는 태도는 어려운 시절에 더욱 빛을 발했다.






하지만 둘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건 고객인 임차인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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