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424]

법적 조치

by Kema

301호는 월세 문제에 있어서도 애를 먹었다.



처음에는 며칠 늦는 정도였다.

입금일이 조금 지나도 며칠 뒤에는 어김없이 돈이 들어왔기에,

김대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공백은 길어졌다.

며칠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보름이 되었다.


결국에는 한 달이 통으로 밀린 채로 몇 달이 지나갔다.


김대리가 중간에 몇 차례나 연락을 했지만,

처음에는 건성으로나마 납부하겠다던 답장도 뜸해지더니,

한 달치 연체를 깔고 가기 시작하고부터는 문자를 보내는 일 자체가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301호의 메세지가 도착했다.


'사장님, 제가 사업 자금이 필요하니 보증금을 절반만 내주십쇼.

그래야 월세도 내고 하니까 서로 이해좀 해줍시다.'


김대리는 휴대폰을 떨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증금을 마치 제 주머니에 있는 돈처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게다가 당연히 납부해야 할 월세도 김대리 탓으로 내지 못한다는 말투였다.


잠깐 '한번만 믿어볼까' 하는 마음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보증금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임대인의 유일한 안전장치라는 생각에 마음을 바로잡았다.


'죄송하지만, 보증금은 퇴거 이전 반환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김대리는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 문자를 발송했다.






그 날 이후, 301호는 월세를 아예 납부하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두 달치 이상이 연체되었고, 김대리의 마음 속 불안도 점점 커져갔다.


문자도 보내 보고, 전화도 해 보았지만 적반하장이었다.


"보증금 주는 건 어떻게 되가나요?"


마치 주기로 한 돈을 김대리가 떼먹고 있다는 투였다.






"희윤아,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늦은 밤, 관리 파일을 들여다보던 김대리가 희윤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법적 조치까지 가는 건 너무 부담스럽지 않아?"

맞은편에 앉은 희윤이 팔짱을 낀 채 걱정스럽게 물었다.


김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마를 짚었다.


“나도 그래. 최대한 원만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야.

하지만 이렇게 계속 끌려다니면, 저 사람은 끝없이 요구할 거야.

CCTV 달아달라, 신발장 바꿔달라… 다 우리가 호구로 보였기 때문이잖아.

지금도 보증금을 내줘야 월세를 준다고 나오는데, 더 늦으면 진짜 답이 없어.”


희윤은 잠시 침묵하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나도 불안해. 저 사람 태도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내고 버틸 것 같아.

그렇다고 바로 법적 조치라니, 너무 비인간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그래서 더 단호해야 돼.” 김대리가 확고하게 말했다.


“빠르게 조치하지 않으면 결국 임차인도 피해자가 돼.

더 이상 갈 데조차 없어질 수 있으니까."






김대리는 관련 자료를 뒤져 명도 절차를 공부했다.


연체 사실 증거 확보 – 은행 내역, 문자, 장부 기록.

내용증명 발송 – 미납 사실 통보, 기한 내 납부 요구, 계약 해지 예고.

명도 소송 접수 – 판결까지 수개월, 강제집행까지는 10개월도 걸릴 수 있음.

강제집행 – 집행관 동행 퇴거, 비용은 우선 임대인 부담 후 보증금 공제.



연체 사실에 대한 증거는 충분했고, 임차인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하면 법적 조치의 첫 단추를 꿸 수 있다.


그 뒤, 셀프로 명도 소송 접수를 하고, 법원 판결을 얻어 강제집행이 가능하진다.

집행관이 동행하여 퇴거 조치를 하는 데 까지 걸리는 기간은 10개월 까지도 걸린다고 했다.

게다가 강제집행 비용 또한 우선은 임대인이 부담하는 수 밖에 없었다.


더 미루면 손해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인 상황이다.

게다가 임차인이 301호 안에서 호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크게 수리할 일이라도 만들어 놓았다면 모두 김대리가 떠안아야 한다.



김대리는 장부, 은행 입금 내역, 문자 발송 기록까지 모두 정리하여 하나의 문서로 만들었다.

그리고 같은 문서를 세 부 출력하여 우체국으로 향했다.


“...귀하의 월세 및 관리비가 2개월 이상 미납되었습니다.

본 통지 도달 후 7일 이내 미납액 전액을 납부하지 않을 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명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알립니다.”


빨간 도장이 찍힌 내용증명은 그대로 301호의 손에 전달되었다.






이틀 뒤, 전화벨이 울렸다.

김대리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이게 뭡니까? 법정 가면 임차인이 무조건 이기는 거 몰라요?

요즘 건물주가 세입자 괴롭히면 바로 기사 나는 거 아시죠?

당신들을 두고 적폐라고 하는거 몰라요?”


마치 탐욕스런 김대리가 자신들에게 이유 없는 갑질을 한다는 말투였다.

김대리는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저희도 이런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습니다.

지내시는 동안 최대한 불편 없도록 관리에 최선을 다 했고,

연체 초기에 수 차례 통보도 해 드렸습니다.

저는 임대인으로써 법적, 도의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차인분은 월세가 두 달 이상 미납된 상태고, 법적 해지 요건은 충분합니다.

판결은 시간 문제지만 저도 굳이 법원까지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김대리는 목소리를 낮춰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퇴거하신다면, 밀린 월세만 제하고 보증금은 돌려드립니다.

하지만 거부하시면, 소송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의 월세 및 지연 손해금과 부대 비용이 모두 보증금에서 차감됩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이사하실 보증금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죠."


임차인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지금 나가면 월세만 제하고 돌려준다고요?”


“네. 선택은 임차인분 몫입니다. 저희는 이미 절차를 시작했으니까요.”






며칠 뒤, 301호는 조용히 떠났다.


짐은 빠져 있었지만, 방 안은 엉망이었다. 베란다에는 양주병들이 굴러다녔고, 한쪽 구석에는 구겨진 명품 쇼핑백이 널브러져 있었다. 벽에는 TV 설치를 위해 연필로 표시해둔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김대리는 빈 방을 둘러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우린 사업가다. 원칙을 세우고 지켜야한다.'


방 안은 고요했고, 그 고요 속에서 김대리는 처음으로 가벼운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안도감보다 더 크게 가슴을 채운 것은,

결국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깨달음이었다.


자신의 건물로 하는 임대업이라 해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만으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꼈다.


호의를 베풀면 상대가 고마워할 거라 믿었던 건 착각이었다.

원칙 없이 양보할수록, 임차인은 더 많은 것을 당연하게 요구했다.


“임대업도 사업이야.”

희윤과 나눈 말이 빈 방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더욱 깊이 마음속에 새겨졌다.


김대리는 흩어진 빈 병들을 치우며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피로 속에는 임대인으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는 뿌듯함이 묘하게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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