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425]

무르익다

by Kema

시간이 흐르면서 둘은 점점 능숙해졌다.

수리도, 관리도 이제는 노하우가 붙어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임대인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리기만 하던 월세 전환은 어느 순간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은행 이자만 간신히 메우던 규모에서, 어느덧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규모가 되었다.

덕분에 둘은 월급 대부분을 저축할 수 있었고, 월세는 복리처럼 불어났다.


김대리와 희윤의 건물은 인근 부동산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괜찮은 집”으로 자리 잡았다.

심지어 본 적도 없는 중개사가 먼저 전화를 걸어,

“다음에 매물 나오면 꼭 부탁한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둘의 땀방울이 배인 건물은 이제 확실히 ‘좋은 품질의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둘은 중개료를 아끼기 위한 수고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관련 카페에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예쁘게 단장한 방을 정성껏 소개했고,

예비 임차인들에게는 직접 집을 보여주며 성심껏 설명을 하였다.


퇴근 시간과 주말을 할애해야 하는 고된 일이었지만,

좋은 집을 발견했다며 안도하는 임차인의 표정을 볼 때,

그리고 직접 만든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만큼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한 성취감이 있었다.






희윤은 집을 고칠 때마다 신경이 쓰이던 낡은 통신선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임차인들이 입주할 때 마다 통신사별로 새 인터넷선을 설치한 뒤 방치하고 떠나기를 반복하자,

건물 외벽과 옥상은 전선 덩굴로 뒤덮인 듯 지저분해졌고, 심지어 안전 문제까지 생겼다.


둘은 인터넷 업체들과 협의하여 건물 전체에 통합 서비스를 도입, 관리비에 포함시켰다.


개인별로 가입할 때보다 요금은 훨씬 저렴해졌고,

AS 등 조치도 빨라져 임차인들도 만족해했다.






수도 요금도 획기적으로 줄었다.


김대리는 구청 수도과에 문의한 끝에, 실제로는 열여덟 가구가 살고 있는 건물에 행정상 일곱 가구만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누진세는 ‘가구 수’ 기준으로 계산되다 보니,

열여덟 가구 분량의 물을 일곱 가구가 쓰는 것으로 집계되며 요금이 터무니없게 나온 것이었다.


입주민 수를 정확히 등록한 뒤부터 수도세는 눈에 띄게 줄었고,

‘임대인의 지식과 성실함이 임대업의 수익성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비만 오면 어김없이 말썽이던 누수도 정기적인 외벽 방수 공사로 해결했다.


정기적으로 옥상 방수를 점검해 주고, 성실하게 시공하는 양심적인 업체와

장기 거래를 이어가며 신뢰를 쌓았다.


벽지가 젖지 않으니 곰팡이도 생기지 않았고, 도배를 새로 해야 하는 주기도 훨씬 길어졌다.

가만히 계산해 보니 오히려 비용 면에서 절감이 되었다.


김대리는 이 업체를 주변 건물주들에게도 소개했고,

덕분에 동네 전체의 건물 관리 수준이 함께 올라갔다.





물론 임차인과의 마찰도 간혹 있었다.


밤마다 친구들을 불러 다른 세대의 잠을 방해하거나, 주차장에 커다란 캠퍼를 세워 다른 입주민들의 주차를 어렵게 만드는 임차인도 있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분리수거장의 쓰레기 봉지를 뜯거나, 자살 소동을 벌이는 임차인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김대리는 이런 상황을 주식 투자 개념에 빗대어 ‘보험회사’처럼 접근했다.

보험회사가 건강한 '계약자'를 가입시키듯, 건전한 '임차인'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주변에 좋은 직장과 학교가 있는 입지의 건물을 고르고,

계약 시 직장 정보를 확인해 급여소득자를 중심으로 계약하며,

충분한 보증금을 받아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이런 장치들 덕분에 김대리는 10년 간의 건물 운영에서도

임차인들과 갈등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보험회사가 그렇듯, 확률을 줄였을 뿐 문제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보험회사와는 달리,

건물 문제는 김대리가 '노력'을 들이면 대부분 해결되었다.


껄끄럽다는 이유로 임차인을 피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면 마법같은 일이 일어났다.


김대리는 대화를 할 때 감정을 섞으면 상대방 역시 감정적으로 맞서게 되어

결국 원만한 해결이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 임차인을 ‘나를 귀찮게 만드는 비상식적인 존재’라 여기는 대신,

보험회사가 운영 과정에서 확률적으로 사고를 보상해야 하는 것처럼

임대업에서도 피할 수 없는, 단지 내가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관점을 바꾸자 문제는 한결 명확하게 보였고,

해결 과정 역시 훨씬 효과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사 일을 처리하듯,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임대인의 입장을 전달했다.

계약 내용을 다시 상기시키고, 때로는 보증금이 차감될 수 있음을 알리며,

“빠르게 대안을 찾는 게 임차인에게도 유리하다”는 점을 차분히 설득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문제는 의외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둘은 깨달았다.


임대업은 단순히 건물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을 지는 일이었다.


사업은 점점 단단해졌고, 수익은 안정됐으며,

무엇보다 두 사람의 마음도 함께 원숙해졌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여유가 생겼고,

그 미소에는 지난 수년간 쌓인 성취감과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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