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을 쌓으며 행복을 만들어갑니다

계획의 시작 (1)

by Kema

눈을 의심했다.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하고, 분명 단단한 사무실 바닥 위에 놓인 튼튼한 의자에 앉아 있는데도 몸 전체가 아득히 먼 어둠 밑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초점이 흐려져가는 시야를 애써 다잡으며 몇 번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내 이름은 그곳에 없었다.






"마이 힘들제? 쪼매만 참아 봐라. 니도 과장 달아야 안되겠나?"


인력이 넘쳐나고 발에 채이는 게 과차장 나부랭이들인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 회사는 오랜 불황을 뚫고 막 성장하기 시작하는 단계였고, 어려운 시절 채용을 동결했던 결과로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업무량 대비 사람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신입 사원 딱지를 막 뗀 직후부터 경영진이니 이사회에 올라가는 보고서를 밤을 새워가며 떠듬떠듬 혼자서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군 제대 후 복학 이전까지의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구청 문화센터에서 배워 놓은 파워포인트와 엑셀 덕택에 나는 그 어느 동기보다도 많은 업무를 부여받았고, 그렇게 사 년 가까이 한 부서의 팩맨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히 재무 기획 부서 임원의 눈에 띄게 되었다. 핵심 인재 풀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부서이지만, 동시에 심각한 업무량과 무서울 정도의 업무 난이도로 인해 모두가 두려워하는 조직이었다. 그때의 나는 많이 젊었었나 보다. 두려움도 컸지만, 인정을 받고 더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팀을 옮기고, 연차만 채우면 자동으로 달아주는 대리가 되었다. 누구 씨 누구 씨 불리다가 대리님이라고 불리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새 조직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살벌했고, 업무의 난이도는 이해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각 조직의 에이스들이 모여드는 부서였기에 부서 내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았다. 모두가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처음 맡은 업무는 환 헤지 관련 계정과목 몇 개의 분석과 전망이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파생상품 회계처리를 전임자가 파일 몇 개만 딸랑 넘겨주고는 다른 부서로 가버리는 바람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파악해 나가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FRS 도입으로 인한 ERP 시스템 변경까지 있어 더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처음 부서를 옮긴 그 달에 긴 추석 연휴가 있었고, 나는 연휴 내내 사무실에 늦도록 앉아 내가 담당자가 되어야 할 업무를 공부했다. 연휴가 끝날 무렵에야 간신히 어떤 로직으로 업무가 돌아가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부서에서 가장 어리고 연차가 낮은 축이었고, CPA 자격증을 소지한 많은 팀원들과는 다르게 아무런 재무 관련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업무를 밀고 나가려면 시간을 더 많이 쏟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주말에도 별로 쉬지 않았다. 은행원으로 IMF 등 산전수전을 다 겪으셨던 아버지와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신 어머니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원래 회사 들어가면 다 그런 줄 아셨던 것 같다.


그렇게 2년 여를 버티자, 조금씩 업무가 편안해지고 회의 석상에서 발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나에게 파트 하나가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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