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의 시작 (2)
내가 맡은 파트는 세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를 파트장으로 하여 두 명의 직원을 데리고 회사의 사업계획과 연간 전망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분석하는 일을 담당하는 조직이었다. 전임 파트장의 직급은 과장이었고, 이 파트를 떠나면서 차장으로 승진하였다. 나는 처음 재무 기획 부서로 옮겼을 때와 비슷한 부담감과 함께 또 비슷한 성취감을 느꼈다.
일은 녹록지 않았지만 즐거웠다. 1년 차이씩 밖에 나지 않는 밑의 두 직원들은 너무나도 충실히 내 지시를 따라 주었고, 덕택에 함께 새우는 밤이 뿌듯했고 새벽에 기울이는 소주잔이 피로를 날려주었다. 업무량은 늘 버거웠다. 툭하면 온갖 시나리오를 반영한 재무제표들을 공장인 양 찍어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사적인 조직 개편이 시작되었다. 사업이 커지면서 기존의 조직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졌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성과관리를 위해 조직별로 재무제표를 만들고 있었고, 조직별로 나뉘어진 사업계획과 연간 전망 재무제표를 만들어 내는 일이 우리 파트의 업무였다. 우리는 조직 개편이라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밤을 새울 지경이었던 업무량은 우리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개편 전 조직, 그리고 예상되는 개편 후 조직 기준의 재무제표를 동시에 만들어 내놓아야 했다. 조직 개편은 특히 고위 경영진들에게 무척 민감한 사안이었다. 재무제표에는 한 치의 오류도 허용될 수 없었다. 우리는 자주 코피를 흘렸고,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무서워했다.
기획 담당 임원이 나를 호출한 건 그 무렵이었다. 나는 우리가 만든 재무제표에 무슨 오류라도 있었나 하고 손때 묻은 노트와 계산기, 서류철들을 한 아름 들고 어딘가 위엄이 서린 듯한 임원실로 들어섰다.
"니 요즘 마이 힘들다매?"
그다지 나 고생하오 하고 떠들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었음에도 우리 파트의 업무량은 이미 다른 팀원들이 걱정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누군가 임원에게 귀띔을 해 주었고, 며칠 우리를 주시하던 임원이 안 되겠다 싶어 파트장인 나를 호출한 것이다.
"잘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쪼매만 더 해 보자. 니도 과장 달아야 안되겠나?"
승진을 꼭 바라고 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대리 3년 만에 과장을 달아 준다니 갑자기 몸에서 피로가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임원분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짜르르하기까지 했다.
"나가 봐라. 몇 달만 참고 하믄 좋은 일 생길끼다. 내가 니 하나 못 챙기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