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의 시작 (3)
임원실에 머문 짧은 시간 동안 들은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은 동기를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승진도 승진이었지만,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듯한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마음이 더 컸다. 점순이와 성례를 시켜준다는 약속에 몇 마지기 밭을 소처럼 갈아버린 김유정 소설의 주인공처럼, 나는 그 해 설 연휴부터 추석 연휴까지의 모든 휴일을 모조리 사무실에서 보냈다. 조직 개편 작업 역시, 우리 파트가 밤을 새워가며 찍어낸 시나리오 재무제표들 덕택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추석 직후 발표된 승진 대상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 나에게는 펜 하나를 쥘 힘도, 키보드의 자판 하나를 누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우러난 열정은 나의 착각이었던 것인가. 기계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했고, 하루 종일 자리는 지키고 있었지만 도저히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파트원들과 주변 선후배 동료들, 그리고 팀장까지도 나의 심정을 알았는지 묵묵히 조심스레 침묵으로 배려해 주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루가 그렇게 길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자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조차 견디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완전히 의미를 잃어버린 업무는 내 바로 아래 파트원에게 팽개치듯 넘겨버리고 나는 소극적인 태업을 시작했다.
아침이면 간신히 일어나 시간에 대어 출근만 하고는 근처 헬스장으로 향했다. 게으르게 느릿느릿 씻고 돌아와서는 책상 앞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부서 직원들과 한동안 점심도 먹지 않았다. 그들의 배려가 너무나도 아프고 부담스러웠다. 다시는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가운데에도 시원하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가. 왜 아침이면 힘겹게 이불 밖으로 나와 험난한 출근길을 뚫고 사무실에 꼬박꼬박 들어서야 하는가. 아무런 열정도 그래야 할 동기 부여도 사라진 지금 왜 나는 다른 곳이 아닌 이곳 사무실에 만신창이가 된 채로 앉아있어야 하는가.
모든 열정이 사그라들고, 죄 없는 동료들이 미워진 그 당시의 내가 찾아낸 회사의 의미는 단 하나, 월급이었다. 내 현재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고, 미래를 그나마 덜 불안하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수입원이 회사에서 받는 알량한 월급이었던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곳을 벗어날 수 있도록 월급만큼의 내 소득을 만들어야 한다. 회사에 기대지 않는 나 자신의 삶을 살자.
벌써 아득해진 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날의 찢겨지는 듯한 상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월급에 매여 눈치만 보던 직장인에서, 월급을 뛰어넘는 현금흐름을 만드는 자산의 주인이 되었고, 사무실은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 아닌 자아실현의 무대가 되었다. 모든 변화는 그때의 아픔이 남긴 문장 하나—‘회사에 기대지 않는 나 자신이 되자’—에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