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을 쌓으며 행복을 만들어갑니다

준비된 신혼 생활 (1)

by Kema

2011년 가을, 우리의 결혼식이 치뤄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제일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었겠냐마는, 아내는 나와 같은 꿈을 꾸어 주었다. 리모델링이 채 끝나지 않아 신나 냄새가 남아 있는 예식장을 싸게 빌려 올린 결혼식이었다. 신부 대기실의 한쪽 구석에서는 아직도 페인트칠 도구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 날, 예식장의 허름함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방식, 우리의 철학을 상징하는 듯하였다.







나는 운이 좋았다. 가정을 꾸리기 전에 이런 깨달음을 얻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그 시절 내 또래들은 대부분 최소 30평대 아파트에서 신상 가전과 가구를 갖추고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그게 ‘정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빚을 지고 허세 섞인 소비를 하는 대신 불편을 감수하며 종잣돈을 모으고 싶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불편함이야말로 나를 다음 단계로 데려다 줄 발판이라는 것을.


아내는 연애 시절부터 이런 꿈을 공감하고 함께 꾸어 주었다. 어떤 신부가 화려한 결혼식과 번드르르하니 멋진 아파트, 그리고 신상 가전 가구들을 마다하겠는가. 지금 다시 생각해도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무 가진 것 없이 계획만 있던 벌거숭이 같은 사람의 꿈을 함께 실현시켜 주었으니까.


월급 이상의 자산 소득을 만들어 내자는 꿈은 거창했지만 가야할 길은 막연했다. 그래도 우선 종자돈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했고, 뻔한 월급으로 종자돈을 만드려면 아끼고 쪼개는 수 밖에는 길이 없었다. 투자 경험이래봐야 망아지같던 신입 시절 운좋게 주식에서 수익을 본 후 허파에 바람이 들어 알량하게 모아둔 돈을 다 날렸던 기억 뿐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며 얼마나 돈을 모으기가 어렵고 자산이 소중한지를 깨달았고, 절대 함부로 굴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꿈과 비전을 아내와 공유하고 나니,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에 대한 방향성이 명확해졌다. 결혼식은 남들 하는 거 신경쓰지 말고, 부모님을 위한 잔치라고 생각하며 최소한으로 치르자. 신혼 여행은 우리끼리 기분 낼 정도로만 배낭 여행 가듯 다녀 오자. 전세금은 엉덩이에 깔고 앉는 돈이다. 최소한의 돈만 깔고 앉은 뒤, 나중에 내 집을 마련해서 넓찍히 살자. 가전과 가구도 이사다니다 보면 다 망가지니까 우리 집 생기기 전까지는 전부 중고로 사자.



우리는 우선 통장 잔고부터 공유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각자의 현재 은행 잔고에 나와 아내가 6개월 남짓 남은 결혼 전까지 받을 월급을 고려하니 예산이 명확해졌다. 양가 부모님들께는 최대한 섭섭하시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는 갖추기로 했다. 아무리 부모님이라도 우리의 꿈을 완전히 이해하도록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에.


신혼 여행은 허니문 패키지 대신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시절 신용카드로 모은 마일리지를 활용해서 다녀 오기로 했다. 내 마일리지로 아내 항공권을 예매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했고, 증명서가 나오려면 혼인신고를 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 두 명을 증인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법적 부부가 되었다.


비용들을 고려하고 나니, 우리가 신혼집에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은 9천만 원이 한계였다. 사무실은 나와 아내 모두 강남에 위치해 있었기에, 9호선 라인을 훑듯이 뒤져가며 집을 찾아 다녔다. 강남 가까운 곳에는 오피스텔 단칸방 전세도 1억이 훌쩍 넘었다. 강서구 근처에 가서야 비로소 둘이 다리를 뻗고 지낼 만한 공간들이 예산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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