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온 건 경제적 안정감
출근길 내내 무언가를 곱씹던 김대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빈 엑셀 파일을 띄웠다. 셀에 숫자를 넣고 수식을 만들며 한참을 고민했다. 화면 가득 표와 계산식이 늘어갔지만, 김대리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전날 한부장이 떠난 후 한참을 앉아 있다 초밥집을 나와서도 고민은 계속됐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생각은 자연스레 과거로 향했다.
크게 궁핍하지는 않았지만 넉넉했던 적도 없는 집. 부모는 늘 돈 때문에 다투었고, 어린 시절부터 막연한 불안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돈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단 하나는 분명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 부모님이 싸우지 않도록...’
전역 후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복학을 위해 방학 내내 과외를 뛰었고, 끼니는 편의점 컵라면과 식은 밥으로 때웠다. 등록금을 치른 뒤 백만 원을 쥐여드렸을 때, 소리 죽여 우시던 어머니를 보며 처음으로 돈의 무게를 실감했다.
김대리는 늘 돈 때문에 불안했고, 그래서 소심해졌고, 때로는 비겁해졌다. 반면, 돈이 넉넉한 친구들은 달랐다. 당당했고, 여유로웠고, 언제나 선택하는 쪽에 있었다. 그는 자라면서 깨달았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사람 자체도 여유로워진다는 것을. 그래서 대학원 진학도 포기하고, 빨리 취업해 돈을 벌기로 했다.
직장에 들어와서는 월급이 모든 걸 해결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회사는 또 다른 불안이었다. 결코 직원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았고, 성실히 일해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쓸쓸히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을 보며 아버지가 떠올랐다. 월급만 바라보는 삶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승진에서 밀려난 자신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회사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김대리가 진짜 바라온 건 경제적 여유, 아니 자유였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몇 년을 더 이렇게 버텨야 하는 걸까.
행복이 뭔지는 아직 몰랐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게 하나 있었다.
돈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행복을 찾을 여유라도 생긴다는 것.
그래서 엑셀에 월급과 용돈을 뺀 저축 가능 금액을 입력해 가며 자신의 상황을 계산해 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흔히들 “부자라면 10억은 있어야지”라고 말하곤 했는데, 지금 수준으로 모으려면 30년 가까이 걸린다. 이자를 고려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식? 코인? 한 방에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이다. 단순 계산만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앉아 고민했지만 결론은 분명했다. 회사에 매달리지 않고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게 행복의 첫걸음이지만, 월급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
복잡한 머릿속을 안고, 김대리는 희윤을 만나러 갔다. 만난 지는 이제 반년 남짓이었지만, 불안하고 공허한 마음을 감싸주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김대리는 희윤과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