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109]

부모님의 체면

by Kema

며칠 뒤, 김대리는 부모님께 결혼 결심을 전했다.


저녁 밥상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처음엔 놀라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이 동시에 환하게 바뀌었다.


“그래, 드디어 때가 됐구나.”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담담하게 말했지만, 어머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대리는 조심스레 희윤과 나눈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는 그냥 무리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하려고 해요.

희윤이랑 알아봤는데, 신문사에서 ‘합리적 결혼문화 캠페인’이라고 해서 구내식당을 무료로 빌려준대요. 깔끔하게만 꾸미면 손님들 모시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요.

괜히 빚내서 시작하고 싶진 않아요.”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니 애비가 능력이 없어서 그러니. 아무리 그래도 신문사 구내식당이라니.

내 이전 직장 동료들도 올 거고, 옛 부하 직원들도 다 올 텐데…

아부지가 어디서 빚이라도 좀 알아봐야겠다.”


어머니도 덧붙였다.

“친척들이며 아는 사람들 다 오는데, 최소한은 해야지. 체면이란 게 있는 거야.

손님들 모아 놓고 신문사 지하에서 하면 되겠니.”



김대리는 알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평생 넉넉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어도, 다른 사람의 시선과 체면에는 민감했다. 김대리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김대리의 부모 세대에게 체면은 곧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처럼 이웃이 서로의 삶에 무심한 시대가 아니었다. 한 동네에서 자라면 집안 형편, 부모 직업, 자식 성적까지 훤히 드러났고,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시장에서 쌀을 한 되 외상으로 사는 일, 친척에게 급전을 빌리는 일, 자식이 학교에 진학하고 직장을 잡을 때 추천을 받고 보증을 서는 일 — 이 모든 것이 그 집의 평판에 달려 있었다. 체면이 무너지면 외상도 막히고, 급전을 빌릴 곳도 없어지고, 먹고사는 길이 아예 막혀버릴 수도 있었다.


이런 공동체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다.

공동체 안에서 그 집안의 자리를 확인받는 거의 유일한 무대였다.


누구를 불렀는지, 어떤 음식을 냈는지, 예식장이 어디였는지가 곧바로 신용장부에 기록되듯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실제로 몇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시골에서 결혼식을 대충 치른 집안은 ‘저 집은 망했구나’, ‘빚더미에 앉았나 보네’라는 말이 퍼졌고, 그 소문이 자식들의 취직이나 혼처에도 그대로 따라붙었다. 체면은 허영이 아니라 신용이었고, 신용은 곧 생존이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단호함과 어머니의 걱정은 그들이 살아온 시대가 만들어낸 합리적인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김대리는 이해하고 있었다. 더 이상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고집만 세울 수는 없었다. 애써 웃으며 “더 알아보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물러나왔다.


그날 밤, 김대리는 희윤에게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놓았다.


“희윤아, 부모님은 꼭 번듯한 예식장에서 해야 한다고 하셔.

이해는 가… 근데 난 최소한으로 시작하고, 우리 행복을 중심에 두는 우리 방식이 마음에 드는데.."


잠시 고민하던 희윤은 따뜻하게 대답했다.


“오빠, 괜찮아. 나도 부모님 마음 이해해.

예식장은 부모님들 뜻에 따르면서도, 대신 합리적인 곳을 우리가 찾아보자.

비용도 줄이고, 불필요한 건 과감히 빼면 되지. 내가 한번 알아볼게.”


희윤은 밝은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같이 고민하자.

살다 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엄청 많을거야. 같이 헤쳐나가면 되잖아!”








이전 10화[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