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108]

요새 다들 그러던데

by Kema

다음 주말, 김대리와 희윤은 작은 카페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았다.

김대리가 혼자 만들던 ‘재무제표’는 이제 두 사람을 합친 ‘연결’ 재무제표가 되어 있었다.


“희윤아, 우리 둘 재무제표를 합쳐서 계산해봤어. 둘이 모으는 속도를 합치니까 확실히 혼자 할 때보다 훨씬 나아지더라구.”


엑셀 시트엔 두 사람의 월급, 지출, 저축액이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한달 뒤, 두달 뒤… 미래 자산의 모습을 나타내는 재무제표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우리가 결혼할 때 까지 모을 수 있는 돈은 이만큼이고…”


김대리는 화면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모은 돈에다 전세대출이랑 신용대출까지 땡기면, 우리도 꽤 괜찮게 시작할 수 있어.”


김대리는 엑셀 시트를 하나 더 열어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 봐 내가 요즘 트렌드를 찾아서 한번 짜 봤는데, 한 5억 정도 대출 받으면 번듯한 아파트에다가 가전, 가구, 예식 비용까지 되겠더라고.”


희윤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는 김대리의 표정에는 어딘가 모를 불안감의 그늘이 있었다.

희윤은 잠시 말없이 그 표를 들여다보다가, 김대리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오빠.”


김대리는 긴장한 채 희윤의 말을 기다렸다.


“정말 고마워 오빠. 오빠가 이렇게까지 고민해준 거…

화려하게 신혼 시작하자고 해준 것도.


근데 오빠, 굳이 남들 하는 대로, 남들 쫓아서 살지 않아도 난 괜찮아.


오빠가 무슨 고민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도 다 알고, 또 함께 하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 딱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으로 시작하자.”


김대리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듯한 희윤의 말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저며왔다.


“그래도 네 친구며 주변 언니들은 다 좋은 데서 살고 결혼도 화려하게들 했잖아.

네가 그 사람들보다 부족할 게 하나도 없는데 너만 그렇게 초라하게 시작하면....”


희윤은 김대리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빠. 그게 꼭 또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

예전에 지윤 언니 결혼식장 갔잖아. 얼마 전에 아기 가졌다던.


요새 언니랑 얘기해보면 형부하고 생활비땜에 맨날 싸운대.

대출이자 내고 관리비 내고 나면 남는게 없대.

지금도 어버이날이다 뭐다 집안 행사 있는 달은 적자라던데 애까지 낳으면 어떻겠어.


집이건 살림이건 다 우리 힘으로 늘려가는 재미로 사는게 낫지,

무리해서 꼭 처음부터 다 갖출 필요는 없잖아.”


김대리는 간신히 입을 열어 이야기했다.


“고마워 희윤아 진심으로. 그래도 너한테 너무 미안하다. 부끄럽게 해서.

너희 부모님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들고.”


“오빠, 결국 우리 둘이 사는 인생이야.

부모님보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이 더 중요하고.

게다가 남들은 사실 우리한테 큰 관심도 없어.

다들 자기 사는 게 바쁘지, 누가 우리 신혼집 평수까지 신경 쓰겠어.

결국 우리 스스로가 신경 안 쓰면 되는 거잖아.”


희윤은 목이 메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김대리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오빠, 우리 그냥 최대한 줄여서 시작하자.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불편이 우리의 자산이 될 거야.

그리고 같이 꿈꾸면 돼. 우리라고 부자 되지 말란 법 있어?”


김대리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희윤의 뒤에서 비쳐오는 햇살이 유난히 따뜻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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