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히 정리하다
김대리와 희윤은 별 탈 없이 결혼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상견례도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김대리 가족이 삼십 분이나 늦기는 했지만, 선하고 욕심 없는 양가 부모님들 덕에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되었다.
지금까지 둘이 모아둔 돈을 합쳐 놓고, 앞으로 결혼 전까지 모을 수 있는 돈까지 계산하자 대략적인 결혼 예산이 나왔다.
비용에 돈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있는 돈에 비용을 끼워 맞추었다.
최소한으로 한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결혼은 인생의 큰 행사였다.
예식과 신혼여행 등 예상되는 비용을 빼고 나자 신혼집을 장만하는 데 쓸 수 있는 돈이 결정되었다.
'7,500만원.'
각자의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큰 돈이었지만 집을 구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했다.
“일단 이 돈으로 전세를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볼까?”
“오빠 내가 어제 전화해 본 부동산이 있거든. 오늘 퇴근하고 가보자.”
“요 근처는 오피스텔 단칸방 전세도 2억은 있어야 해요.
어디 멀리 나가도 지하철 다니는 데는 1억은 잡아야지요.
7천만원이면… 전세는 택도 없고, 월세를 좀 내야 할 겁니다.”
“월세는 얼마나 내야 할까요, 사장님?”
김대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서면 한 80만 원 이상은 보셔야 하고… 외곽으로 가도 이삽십은 들겠지요.”
둘은 말없이 한쪽 벽에 커다랗게 걸린 지도만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엄청난 현실에 머리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좀 더 생각하고 오셔도 됩니다”
중개인의 이야기에 문득 정신을 차린 둘은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을 나섰다.
서로 맞잡고 있는 두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희윤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빠, 세상이 갑자기 무섭다 그치. 그래도 꽤 똘똘하게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희윤아 나 생각난게 있어.”
김대리는 잠시 멈추더니, 선 채로 노트북을 꺼내 화면을 열었다.
“우리 재무제표에 보면 오빠 저축보험 있잖아. 현금이 아니라서 우리 결혼자금 플랜에 안넣었거든.
이거 합치면 9천만원은 만들어져.”
희윤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오빠 그거 입사한 이후로 계속 열심히 붓던거 아니야? 우리 그냥 월세 조금 더 내는것도 괜찮아. 그만큼 더 아끼면서 살면 되지.”
“희윤아, 이 저축보험 어차피 은퇴한 이후에나 돌려받을 수 있는거야.
우리 목표는 최대한 빨리 회사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거잖아?
나 안그래도 이 저축보험이 우리 인생 계획이랑 방향이 맞는건지 고민하고 있었어.
이거 유지하려고 월세 몇십만원 내고, 또 앞으로도 꾸준히 현금 집어넣는 건 전략적으로 맞지가 않는거 같아.
조금 손해는 보겠지만, 내일 바로 가서 해지하고 올게.”
희윤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좀 아깝긴 하지만 오빠 말을 듣고 보니 그건 맞는거 같아. 하루라도 젊을 때 경제적으로 자유를 찾는 데는 도움이 안되니까..”
둘은 부동산을 나설 때 보다는 훨씬 나은 기분이 되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어두운 밤거리를 걸었다.
세상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함께 헤쳐나갈 방법을 만들어 내며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소중한 믿음을 쌓아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