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영접하다
김대리는 하율이가 태어난 뒤 구입한 300만 원짜리 낡은 중고 아반떼 뒷좌석에 희윤과 하율을 태우고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하율아, 오늘 엄청난 사람 만나러 가는 거야. 아빠가 잘 배워와서 널 부자로 만들어 줄게.”
김대리가 장난처럼 말하자, 희윤은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딸래미가 부자되면 나도 덕 좀 보겠네.”
주말 하루를 온전히 반납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개미처럼 모으기만 하던 두 사람은 드디어 자산을 불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옅은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동안 아무리 책을 읽고 고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게시글을 뒤적여도,
현재의 ‘우리’에서 ‘그들’에게 다다르는 길은 중간이 뚝 끊어진 듯 막연하기만 했다.
오늘 만날 사람이 그 길목에 다리를 놓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김대리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파주 외곽, 농지와 삐뚤빼뚤한 상업단지가 뒤섞인 동네 끝자락.
카페 공지에 적힌 교회는 빨간 흙바닥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조립식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는 이미 카페 회원들의 차가 빼곡히 줄지어 서 있었다.
“여기 맞아?” 희윤이 아기를 꼭 안은 채 물었다.
“맞아. 까페에 적힌 그대로야.” 김대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스티로폼 패널로 단열이 된 예배당 안으로 들어서니 나무로 된 긴 교회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벌써 수십 명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하율이가 칭얼거리자 희윤은 급히 젖병을 물렸고, 셋은 맨 뒷줄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았다. 그가 상상했던 ‘커피를 마시며 둘러앉아 토론하는 분위기’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잠시 후, 구레나룻을 길게 기른 반백의 신사가 등장했다.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지만 책상 앞에서만 일해온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이 외모에서 풍겼다.
그는 연단에 서서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예배들 보러 오신 건 아니지만, 제가 목사니 우선 기도부터 하겠습니다.”
희윤은 팔꿈치로 김대리를 쿡 찔렀다.
“오빠, 뭐 땅 토론한댔잖아? 무슨 예배 분위기야…”
“쉿, 들어보자. 목사님이니 그러겠지.” 김대리는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짧은 기도를 마친 그는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카페 글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고 묘하게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기운이 있었다.
건강 얘기를 할 때는 약봉지를 주렁주렁 꺼내 보였고, 건축 인허가 얘기로 넘어가자 익숙한 정치인 이름에 낯선 고위 공무원 이름까지 줄줄이 흘러나왔다. 은행 지점장과 본점 간부들을 마치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 그의 말 속에는 자금 조달도, 허가도 못 해낼 게 없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김대리는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바짝 세웠다.
그는 좀처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이 해 왔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일들을 한참 늘어놓더니, 사람들을 바라보며 불쑥 물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땅 문제로 고민 있는 분 계십니까?”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몇몇 사람들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다들 사연은 비슷했다.
그린벨트 같은 규제로 묶인 땅을 잘못 샀거나, 물려받았는데 팔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코웃음을 치듯 웃으며 자신 있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뭐 그런걸 가지고 고민을. 구청 가서 건축과 최과장 만나세요. 제가 전화 넣어놓을테니.”
“도면 있지요? 도면 챙겨서 저한테 따로 오십시오. 몇 군데 손만 보면 되겠구만.”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김사무관. 오래간만이야…”
즉석에서 하는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문제가 단번에 풀렸다.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리며 감탄사를 터뜨렸고, 김대리는 숨소리조차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그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고, 해결책은 언제나 명쾌했다.
김대리는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정말 있구나. 내가 지금 대단한 인물을 만나고 있는 거야.’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날의 연설을 마쳤다.
"이 분들 땅 같은 거 해결하는 게 제 업입니다. 오늘 와서 보니까 제가 여러분 초대하길 자알 했습니다.
우리 다음 주에도 봐야겠네요.
그냥 보면 재미 없으니 숙제 하나씩들 하십시다."
숙제는 이랬다.
이렇게 개발이 금지되어 있는 땅들 중, 개발 허가만 나면 금싸라기가 될 땅들을 한번 찾아와 보라는 것.
다음 모임은 제대로 된 땅을 찾아온 사람들만 참석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김대리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이 사람 눈에 들어야 한다. 이 기회를 꼭 잡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