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표적
“김대리, 바람이나 좀 쐬러 갈까?”
김대리는 쉽사리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원룸에서 피땀 흘려 모은 종자돈이 허공에 흩어질 뻔한 위기를 넘긴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1억이 열배, 스무 배로 늘어나는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예전엔 ‘전략적 궁상’이라 부르며 자부심을 느끼던 생활도 갑자기 초라하고 지겨워 보였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란 생각이 지워지지를 않았다.
김대리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눈 앞에 거의 와 닿았던 자신의 ‘몫’을 누군가 가로채가 버린 것만 같았다.
김대리는 한부장이 이끄는 대로 한적한 커피숍 한 구석에 앉았다.
눈 앞에 한부장이 앉아 있는데도 도무지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승진에서 누락되어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듯했던 김대리가 최근 다시 활기를 찾는가 싶더니, 요 며칠 사이 갑자기 갈 곳을 잃은 듯해 보였다. 한부장은 김대리가 걱정스러웠다.
“부장님, 저 사실은요…”
김대리는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부장은 몹시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동네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막판에 빠져나온 대목에서는 자신의 일처럼 크게 안도하기도 했다.
“근데… 자꾸만 그 돈이 눈앞에 아른거려요.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렇게 뿌듯하던 제 삶이 갑자기 너무 지겹고 초라하게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정말 그게 다 제 돈이 되는 줄 알았는데…”
김대리는 얼굴을 양 손에 묻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허하게 뚫린 가슴은 도무지 메워지지 않았다.
허무하기는 희윤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이를 돌보고 회사에 다니며 바쁘게 지내는 덕분에 금새 일상으로 돌아왔다.
더 적극적으로 신기루를 쫓던 김대리의 가슴에는 더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김대리, 그런 일이 있었구만. 자네가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가 가네.
하지만 잃을 뻔 한 건 1억이 끝이 아니었어.”
“예?”
뜻밖의 말에 김대리는 고개를 들어 한부장을 바라보았다
“만약 그 목사라는 사람에게 1억을 건넸다고 치자고.
그럼 그 뒤엔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음… 뭐 저는 1억을 날리고, 그 사람은 도망갔겠죠.”
한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그렇게 끝나지 않아.
자네는, 계속해서 돈을 갖다 바치게 되었을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김대리에게 한부장은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목사와 같은 부류의 사기꾼들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상대방이 자신을 전적으로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신뢰를 얻었다는 확신이 들면, 상대가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때 까지 철저히 상대의 피를 빨아먹는다.
목사는 처음부터 김대리를 목표로 삼았을 가능성이 컸다.
자신을 진정한 구원자로 여기며 열성을 다하는 기질적인 면 뿐 아니라,
앞으로 무궁무진한 현금흐름이 흘러나올 직장인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개발하는 땅에 1억을 투자했다고 안심을 시킨 뒤에,
갖가지 핑계로 추가 투자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추가 투자금 역시 열배, 스무배의 수익을 가져다 준다고 유혹했을 것이고,
김대리는 무릎을 꿇으며 목사에게 감사했을 것이다.
게다가 김대리가 이미 건넨 돈들은, 오히려 김대리 자신을 더욱 옭아맬 덫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려는 심리적 기제가 있다.
김대리가 희윤과 함께 번 월급을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대출과 사채까지 끌어다 목사에게 갖다 주는 동안,
언젠가는 분명 이상하다는 느낌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후다.
목사가 사기꾼이라면, 김대리 자신의 인생도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리에게 목사는 반드시 ‘진짜’여야만 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상황이 아무리 비이성적으로 흘러가도,
김대리는 노련한 사기꾼이 깔아놓은 장치와,
스스로 만든 심리적 올가미 속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말이야, 잃게 되는 건 돈 뿐만이 아니야.”
한부장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어나갔다.
“희윤씨와의 관계, 그리고 가정이 어떻게 되었겠나.
자네가 돈을 쏟아붓다 보면, 언젠가는 싸움이 되고 원망이 되고…
사랑 대신 미움만 남을 수도 있었을 거야.
자네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건 단순히 마음뿐만 아니라,
쌓아온 신뢰와 성취감,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게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한부장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너무나 약한 존재이고,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거든.”
한부장의 이야기를 듣고 난 김대리는 온 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사기꾼에게 잃을 뻔한 게 단순한 종자돈이 아니라, 인생 전체였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희윤과 하율의 얼굴이 떠올랐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왔다.
“부장님…”
김대리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한부장은 김대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김대리, 한번에 큰 돈을 벌려고 욕심을 부리면 필연적으로 사기꾼의 표적이 돼.
이번 일 잘 기억하고, 잘 하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게.”
그날, 김대리 눈에 비친 한부장은 누구보다 크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