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하지 않는 위험
“하하, 제수씨가 제법인데?”
한부장은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뒤집으며, 김대리의 고민을 기꺼이 들어주고 있었다.
희윤이 눈여겨보고 있다는 아파트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껄껄 웃으며 희윤을 칭찬했다.
“부장님, 그런데… 아파트가 폭락하면 어쩌죠?”
김대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실제로 그런 적도 있었고. 하지만 그게 투자의 본질이야.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을 짊어지는 것.”
한부장은 김대리를 바라보며 곧바로 되물었다.
“그런데 김대리, 투자를 했을 때의 위험 말고, 투자를 하지 않았을 때의 위험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 한마디가 김대리의 머리를 번개처럼 때렸다.
투자를 하지 않았을 때의 리스크라니.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개념이었다.
한부장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좋건 싫건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잖아.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인플레이션이야.”
“인플레이션이요? 물가 상승할 때 나오는 그거 맞죠?”
“맞아. 대부분은 부정적으로만 보는데, 사실 인플레이션 없이는 경제가 굴러가지 않아.
반대 상황인 디플레이션을 상상하면 쉽게 비교할 수 있지."
김대리는 한부장의 설명을 들으며 인플레이션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이 바람직한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확실치 않았지만,
디플레이션 상황을 상상해 보니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점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자본주의 경제는 ‘필요에 맞추어 생산하는 체계’가 아니라 ‘팔릴 것을 기대하고 생산하는 체계’다.
그런데 물가가 계속 하락하고 돈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당연히 소비를 뒤로 미룬다.
오늘 만 원을 줘야 살 수 있는 물건을 내일은 9천 원에 살 수 있다면,
굳이 지금 사지 않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소비자들이 소비를 미루면, 생산된 물품은 팔리지 않고 재고만 쌓인다.
재고가 늘면 기업은 생산을 중단하고, 재고가 해소될 때까지 고정비를 줄이려 한다.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고정비는 인건비다.
결국 실업이 늘어나고, 급여 생활자들의 고통은 커진다.
임금과 가격 문제는 더 복잡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폐 가치가 커진다고 해서 직장인들의 월급을 낮추는 일은 쉽지 않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임금의 하방경직성’이라 부른다.
사람들의 본능적 저항 때문에 물가가 하락해도 임금을 쉽게 깎을 수는 없다.
그 결과 기업은 고용에 더 큰 부담을 안게 되고, 실업을 늘리는 또 다른 압력으로 이어진다.
장사를 하는 소상공인도 마찬가지다.
메뉴판의 가격을 한 번 내려버리면 다시 올리기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물가가 하락하더라도 가격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메뉴판의 가격이 더 비싸져 보인다.
이런 현상은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적용된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고, 소비는 계속 뒤로 미뤄진다.
김대리의 머릿속에는 점점 더 뚜렷하게 그림이 그려졌다.
디플레이션은 결국 음울한 세상이다.
모두가 현금을 움켜쥔 채 쓰기를 꺼리고, 기업은 줄줄이 도산하며, 대량 실업이 뒤따른다.
시간이 갈 수록 돈의 가치가 늘어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소비와 투자를 미루는 게 정답이지만, 그런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리는 만무했다.
“좀 내용이 어렵긴 한데, 한번 머릿속에 넣어둘 필요가 있겠어요.”
머리를 긁적이며 김대리가 대답했다.
“맞아. 그래서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는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정해 놓고,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해서 적절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도록 만들지.
결론은 명확해.
자본주의 국가에서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존재한다.
시간이 갈수록 물가가 오르고, 현금의 가치는 떨어진다.
저축만 해서는 필연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
김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투자를 하지 않는 리스크’라는 말이 이제야 김대리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한부장은 다시 숯불 위에 고기를 올리며 말했다.
“공급이 제한된 재화는 가격이 잘 안 떨어져.
서울 역세권 소형 아파트는 특히 그렇지.
서울이라는 희소성,
역세권이라는 편리성,
소형이라는 보편적 수요.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붙어 있거든.”
“물론 폭락 위험은 있지. 하지만 확률은 낮아.
오히려 확정적인 위험은 인플레이션이야.
현금을 그냥 쥐고 있는 건, 시간이 갈수록 손해를 확정 짓는 일이지.”
그 순간, 김대리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쩍 켜졌다.
단순히 ‘돈을 잃을까 두려워서 가만히 있는 것’이 사실 더 큰 위험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