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건물주 김대리 #312]

깨달음이 오다

by Kema

모두가 잠든 새벽, 김대리는 곤히 자는 희윤과 하율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잠자리를 빠져나왔다.


평소보다 두어 시간은 이르게 일어났지만, 이상하게도 머리가 맑고 푹 잔 듯 몸이 가벼웠다.

냉장고에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된 하율이가 삐뚤빼뚤 적어 놓은 편지가 붙어 있었다.



하율이는 집 근처 어린이집에 다니며 잘 적응하고 있었다. 많이 안아주고 사랑해준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었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은 항상 “너무 밝고 사랑스런 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김대리는 뿌듯하니 기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이 남았다.


아이는 커갈수록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표현했고,

김대리는 가끔 하율이가 하는 말에 깜짝 놀라 혀를 내두르곤 하였다.


하율이는 언젠가 갑자기 희윤이 있는 곳으로 아빠를 끌고 가더니,

두 사람의 목을 작은 팔로 꽉 끌어안고 말했다.


“우린 가족이야.”


그 순간 김대리는 벅차오른 감정을 참지 못하고 한바탕 눈물을 쏟고 말았다.






작은 방에 들어간 김대리는 불빛이 새지 않도록 문을 꼭 닫고,

벽에 기대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개미처럼 절약해서 예금만 모으던 시절도 있었는데… ‘


어느덧 배당금이 무시 못할 규모가 되었고, 또 다른 투자 재원이 되었다.

처음으로 자산이 현금 흐름을 만들어주었던 때를 김대리는 잊을 수가 없었다.






주식 투자는 결코 쉽지 않았다.


아니, 사실 투자가 쉽지 않았다기보다는 원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고,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절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은 생각보다 심오했다.


투자 대상 기업들을 고르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재무상태가 나쁜 기업들이 탈락했다.

아무리 호재가 쏟아져도, 타이밍 봐서 빠져 나오는 방식이 아니니 매수하기가 망설여졌다.


주가가 하락하고 시장이 흔들릴 때도 확신을 가지고 마음 편히 버티려면, 기업의 실적이 좋고 경쟁력이 뛰어나야 했다. 기업이 속한 산업 자체가 미래에도 유망해야 한다는 점 역시 당연히 고려해야 했다.


김대리는 수많은 재무제표를 살펴보다가, 업종 간, 그리고 같은 업종 안에서도 개별 기업들의 이익률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기업의 최종 이익인 ‘당기순이익’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업활동의 이익을 나타내는 ‘영업이익’이 기업의 미래를 그려보는 데 있어 더욱 소중한 정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또 영업외손익의 추이가 들쭉날쭉하고 항목이 복잡한 기업보다는,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꾸준히 함께 움직이는 기업이 더 신뢰할 만했다.


업종별로는 전통적인 제조업보다 금융 및 테크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더 뛰어났다.

제조업은 설비 투자라는 장벽이 있어, 결국 규모의 경제를 이뤄낸 소수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같은 업종 안에서는 시장을 선도하는 1위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압도적이었다.


어떤 기업이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단순히 같은 업종 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만을 비교해도 상당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투자 초기에는 기업 자체 분석에 공을 들이고, 미래를 예측해 보려는 시도도 많이 했다.


하지만 충분히 공부하고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던 기업도 뜻밖의 소식이나 업황에 주가가 요동치는 등 김대리가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 너무나 많았다.



거시 경제적인 측면도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나 좋은 분위기일 것 같던 시장이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전쟁이나 국내 정치 이슈 등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도 생겼다.


반대로 먹구름이 낀 듯 우울하던 시장이 어느 날 갑자기 치솟기 시작해 손댈 타이밍도 주지 않고 오르기도 했다.


결국 김대리는 시장을 ‘사후에만’ 설명할 수 있지, ‘사전에’ 예측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동안 경제에 대한 꽤 깊은 지식과 상당한 안목을 갖게 되었지만 그게 직접적인 수익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항상 시장에는 김대리보다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일 수 있고,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기관, 외국인 투자자들이 존재했다.


'내가 남들보다 시장을 더 잘 예측해서 수익을 내는 일은 불가능하구나.'


직장인인 자신이 그들과 경쟁해서 이기겠다는 발상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보다 더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김대리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주식 투자에 대한 고민을 할 수록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 지는 더욱 모호해졌다.


‘절대 팔지 않을 주식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얻는다’는 원칙은 분명 옳았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에 나서려면, 그 이상으로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희윤이 귀 아래쪽에 멍울이 만져진다고 했다.


처음에는 두경부에 발생한 악성 종양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하늘이 무너졌지만, 다행히 양성으로 밝혀져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악성으로 변할 가능성에 수술을 권유받았고, 희윤은 씩씩하게 이겨내고 무사히 퇴원했다.


희윤은 퇴원 후 집에서 김대리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내가 실손 하나는 꼭 유지하자고 했지? 병원비랑 약값 거의 다 받았어.”


둘이 전략적 궁상을 처음 실행하면서, 김대리는 자신과 희윤이 누구보다도 건강하니 보험을 해지하고 차라리 적금 들어 병원비를 충당하자고 했다.


하지만 신중한 성격의 희윤은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르고,

큰 돈도 아니니 실손만큼은 유지하자고 고집했다.


결과적으로는 희윤의 주장대로 했던 게 살면서 쏠쏠하게 도움이 되었다.

이번 수술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게. 정말 지금까지 낸 보험료보다 훨씬 더 많이 돌려받은거 같아.”


“맞아.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보험사 망하겠지?”

희윤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김대리는 희윤의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보험사는 망하긴 커녕 강남에 빌딩도 세우는데.’


그리고 그 순간, 번개처럼 깨달음이 스쳤다.


“희윤아.”

김대리는 속삭이듯 조심스레 말했다.


“나… 지금 뭔가 깨달은거 같아.”

“뭔데?”

희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구석에서 그리기에 열중하던 하율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바라보았다.


“우리도 보험회사가 사업을 운영하듯 주식 투자를 하는거야.”


희윤은 귀 밑 반창고를 만지며 알듯말듯한 표정으로 김대리를 쳐다보았다.


김대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설명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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