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보다
둘은 하율이를 데리고 그 해의 온 여름을 다가구 투어에 보냈다.
주말마다 여행 대신 건물만 보러 다니다니. 스스로가 지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임장을 거듭할수록 둘의 머릿속에는 차곡차곡 지식이 쌓였고,
물건을 보는 눈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이게 오늘 마지막 일정이지?”
하율이를 카시트에 앉히며 희윤이 물었다.
“응. 이번엔 좀 각오하고 가는 데야.”
김대리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겉보기엔 낡고 초라할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진짜 노려보던 물건이야.”
지하철역과 수변공원이 도보 거리 안에 있고, 대로에서 한 블록 들어간 조용한 골목.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줄지어 선 아파트 단지 뒷편으로,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배인 커다란 3층짜리 다가구가 우뚝 서 있었다.
자연석 외장재로 마감된 외벽은 군데군데 때가 껴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1층 창틀에는 오래된 스티커 자국, 복도에는 낡은 우편함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그만큼 오래도록 사람들의 생활을 품어온 공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대지 85평에 18세대….”
김대리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은 돈주고도 못 짓는 구조야.”
희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신축이랑 비교하면 너무 낡아 보이는데… 왜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어?”
김대리는 고개를 들어 건물 전체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신축이 반짝반짝 멋져 보이긴 하지. 근데 지난번에 봤지?
요즘은 주차 규제가 까다로워서 70평 대지에도 8세대밖에 못 넣잖아.
이 건물은 그 이전에 지어진 거라 당시 기준으로 설계됐거든.
주차 공간을 넓게 확보하지 않아도 됐던 시절이라, 같은 땅에 세대를 꽉꽉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거지.”
“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론 불가능한 세대 수라는 거네?”
“정답. 이게 구축의 힘이야.
신축은 세대당 면적이 넓어지고 그만큼 수익률은 떨어지는데,
이런 구축은 대지 효율이 좋아서 총 월세 합계가 크다는 장점이 있어.”
“방 구조는 어떨까? 대지가 넓어서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중개사가 다가와 건물 도면을 펼치며 말했다.
“지층과 1층에 네 세대씩, 그리고 2층과 3층은 다섯 세대씩입니다.
원룸 열 개, 1.5룸이 여덟 개인데, 원룸은 다 분리형이에요.”
“1.5룸이요?”
“네. 주방이 붙은 거실에 방이 하나 더 있는 구조죠.
분리형 원룸은 방과 주방이 중문으로 나뉘어 있고요. 조리 공간과 침실이 분리되는 게 장점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도면을 들여다보던 김대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 정도면 세입자분들 살기에 나쁘지 않겠는데요?”
중개사가 웃으며 덧붙였다.
“게다가 초등학교도 근처에 있어서, 위해시설이 못들어옵니다.
아파트 단지 바로 근처라 인프라도 편하구요.”
희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사장님, 방 하나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내부도 보고싶어요.”
문이 열리자 오래된 공기와 함께 싸늘한 기운이 살짝 흘렀다.
내부는 도면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게 느껴졌다.
아파트와 달리 공용 면적이 거의 없어 실사용 면적이 넉넉했던 덕분이었다.
다만 장판 색이 바래 있었고, 벽지는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싱크대는 필름이 벗겨져 있었고, 체리색 몰딩과 방문은 세월을 잔뜩 머금었다.
누가 보더라도 오래된 건물이라는 티가 확 났다.
희윤은 눈썹을 찡그렸다.
“음… 좀 많이 낡았는데….”
그런데 김대리는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낡았어.
하지만 이건 결함이 아니라 기회야.”
희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회…?”
“단점이 겉모습이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잖아.
도배, 장판, 싱크대, 조명—돈과 노력만 들이면 다 바꿀 수 있어.
바꿀 수 없는게 진짜로 중요하지.
입지·대지 크기·세대 수 그리고 구조... 이건 이미 완벽하잖아.
사람들은 반짝이는 신축의 겉모습에 눈이 팔리지만,
진짜 가치는 이런 구축 안에 숨어 있어.”
김대리는 낡은 방문을 쓰다듬듯 바라보다가 말했다.
“겉껍데기는 갈아끼우면 돼.
하지만 이만한 뼈대는 다시는 못 만들어.
그는 한 박자 쉬었다가, 희윤을 바라보며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남들이 꺼려서 싸게 나왔지만,
우리가 손을 보아서 제대로 살려내면
이게 바로 기회가 되는 거야.”
희윤은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낡은 공간 안에서 울려 퍼지는 '기회'라는 단어가, 왠지 묘하게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