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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니 좋았지 Sep 14. 2021

나의 승진과 A의 퇴사

진짜 나 때문이야?

우리 팀에는 나와 같은 직급으로 일 하던 팀원이 1명 더 있었다. (그 직원을 A라고 칭하겠다.) 엄밀히 말하면 A는 나보다 2년의 경력을 더 인정받아 들어온 경력직 직원이었다. 직급은 같았지만 나는 A에게 가끔 업무적인 도움을 받았다. A는 우리가 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다룬 경력이 나보다 길어 기능적으로 나보다 더 잘 아는 팀원이었다. 나는 A보다 회사의 비전과 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아동미술업에 대한 이해가 높은 팀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웃으며 밥을 먹고 업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그저 그런 회사 동료의 사이었다. 우리의 비극은 내가 그녀의 작업물을 컨펌 봐주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팀장으로 승진하기 전부터 나는 우리 팀에서 만들어지는 작업물들을 컨펌 보게 되었는데, (팀원들의 신뢰를 얻은 후 팀장직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회사에서 시스템을 만들어 배려해준 것이다.) 내가 팀장이 될 예정이라는 것은 이미 A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A가 나를 축하라도 해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왠지 인정은 해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온전한 내 착각이었다. 그녀는 내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업물과 업무에 내 피드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나를 리더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무시받는 기분이 들어 힘들었지만 나는 그녀의 기분을 살피느라 싫은 소리를 하기가 어려웠고 그녀는 나에게 평가받는 시간을 너무나 괴로워했다. 우리는 그렇게 삽시간에 불편해졌다. 나에게 실수나 결점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는 업무 진행사항을 나에게 투명하게 공유해주지 않았고 상황을 투명하게 알 수 없어 불안한 나는 그녀를 재촉했다. 그렇게 그녀는 내가 컨펌을 시작한지 2주가 되기도 전에 내가 본인을 힘들게 한다며 울고 회사를 떠났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하고 서운하고 밉고 억울하기도 했다. 일을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괴로웠던 거라면 밤을 새서라도 작업 해보지, 진짜 내 말투에 문제가 있었다면 마주 앉아서 화를 내도 좋으니 이야기 해보지 등의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가 떠나간 것은 동료의 승진에 대한 자괴,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작업물을 평가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그리고 더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등 수 많은 감정들의 결과물이겠다만 나 때문인가 하는 죄책감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게 괴로워 하던 어느 밤 혼자 산책을 하다 문득 내가 발달 장애 아동 교육 봉사를 다닐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 동아리에는 굉장히 중요한 포지션을 맡은 친구가 있었다. 나와는 원래도 꽤 친한 사이였는데, 그 친구는 동아리에 정말 많은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 동아리는 그 친구의 세상과도 같아보였다. 그 동아리 안에서 활동할 때 그 친구는 가장 행복해보였고 ‘나는 여기 있어 마땅해. 나는 여기서 중요한 존재야’ 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있는 것 같았다. 나는 동아리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에는 하고있는 일이 너무 바빴다. 이제와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100프로 성의를 다하지 못했다. 그 친구는 그런 내가 못마땅했는지 가끔가다 나에게 한 마디씩 던졌다. “제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시간이 없으면 새벽에라도 하면 되죠” 그때는 그게 왜그리 기분이 나빴는지, 동아리 활동하며 그 친구와 기싸움을 하다 지금은 결국 얼굴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이 그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도 그 동아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친구처럼 동아리에서 친한 사람도 많고 아이들도 나를 많이 따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달리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다른 하는 일이 많다보니 시간은 없고 이미 많이 친해져있는 동아리 인원들과 친해지는 것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동아리에서 내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았다. 그 친구가 그 사실을 한 번 더 이야기 해줄 때마다 미치게 화가 났다. 사실 그 화는 나한테 난 거 맞다.  (그 동아리 일이 거의 3년이 지난 일이다. 그런데 내가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그야말로 충격이다.)


A에게 내가 그때 그 동아리 친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하니 많은 감정이 풀렸다. 나를 가자미처럼 노려보며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던 그녀를 비로소 완전히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동아리 친구에게도 이 늦은 밤에 마음 속으로 사과를 보낸다..


내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보통 제대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확률이 크다. 다음부터는 이 사실을 잘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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