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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니 좋았지 Sep 14. 2021

이렇게나 갑자기 팀장이 되다

내 나이 27살, 경력 3년차, 나 진짜 팀장 되도 되나?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사무실에 함께하던 팀원은 6명 남짓이었다. 우리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같은 기업이었기 때문에 나는 신입으로 입사했지만 혼자서 여러 분야의 일을 떠안기도 하고 돌연 퇴사해버린 선배의 빈자리를 혼자 몸빵하기도 했다. 밤 늦게 퇴근하기 일쑤였지만 열심히 달리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와 내가 이걸 혼자 다 하네’ ‘나  좀 대단한데..?’ 라는 생각으로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지만 그때는 그게 또 성장의 기쁨이었다. (허허) 그렇게 시간이 흘러 회사는 하나의 사무실에서 복작거리던 팀이 층이 나뉘게 될 만큼 커져버렸다. 


회사가 성장하는 질풍도노의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갔고 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 속에서 따개비처럼 버텨 고인물 버프+그간의 노고와 실력을 인정 받아 대표님께 팀장직 제안을 받았다. 내 첫 대답은 거절이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자유로운 아이였다. 학교와 규율을 싫어했고 불의를 참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영역인 미술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대에 들어갔다. 미술은 내 세상이었고 전부였다. 매일 그림을 그렸다. 질리지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회화의 시간 동안 나는 내 자신과 만났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미술을 가르치는 자유로운 새처럼 살고 싶었다. 왠지 팀장이 되면 이 회사에 5년 이상은 더 다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했다 저거 했다 내 맘대로 살고 싶은데! 


나는 내가 찌들어진 회사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평생 대기업에 몸을 바치고 높은 직급까지 올라가 부귀영화를 누리다 은퇴 후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늘 생각했다. ‘회사는 절대로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나는 절대 회사에 오래 몸 담지 않겠다’ 라고.


하지만 아무튼 대표님은 나에게 끈질기게 제안했고 나는 끝없이 고민하다 결국 승낙하게 되었다. 당장 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고 ‘음..아무튼 지금 나 승진 시켜준다는거지?’ ‘승진은 좋은거잖아?’ ‘돈도 더 많이 주는거잖아?’ 솔직히 이 심경이었다. 물론 회사의 인정에 대한 감사와 막중한 책임감 따위도 함께 느꼈지만 승진의 기쁨이 컸다. 회사 생활을 오래하신 아버지께 팀장 제안에 대해 상담했을 때 아버지는 ‘팀장이 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란다. 회사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업무는 지금과 거의 비슷하게 하게 되고 책임과 힘든 일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는 의미 일 수도 있어’ 라고 하셨다. 내가 팀장이 된다는데 기뻐해주지는 못 할 망정 저런 소리를 하다니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은연 중에 나는 알고있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아빠의 조언이 뼈 아프게 생각날 것이라는 것을. 


아무튼 그렇게 2021년 9월 1일부로 나는 27살에 팀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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