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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Dec 20. 2021

슬램덩크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고도를 기다리며

존 러스킨과 프루스트

24권 247쪽
24권 249쪽
24권 251쪽
24권 251쪽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 그날로부터 한 발자국도 걸어 나오지 못한 듯, 추억을 소재로 쓰는 글들이 많지만, 실상 그 시절의 증언자들과 함께하는 회상의 행위가 자주인 건 아니다.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도 나 혼자 갈 때가 많고... 그 시절 자체를 그리워한다기 보단,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증상인가 봐.


  어차피 현실 그대로의 이야기는 감흥이 덜 하잖아. 또한 회상 자체가 이미 문학적으로 미화된 과거지향적 시선이기도 하고... 실상 회상이 일어나고 있는 지점인 ‘지금 여기’를 즐기는 성향. MBTI 검사도 그렇게 나오더라구.


  그 향유의 수단이 문학과 예술인 듯, 그 동지를 만난 듯 했던 기쁨도 있었고... 정작 그 시절의 친구들과는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거든. 그 회상적 예술성이라는 게, 술자리에서 나누는 옛이야기와는 다른 거니까.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 때문에만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결실이 풍부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행복을 행복 자체로서 추구한들 권태밖에 얻지 못해 그것을 찾아내려면 그 밖의 것을 찾아내야 하듯, 심미적인 기쁨이란 우리가 아름다움 그 자체 때문에 뭔가 우리들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언가로서 추구하였을 때에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존 러스킨이 프루스트에 관해 쓴 글의 일부. 내겐 <슬램덩크>가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지 과거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 도통 해명되지 않는 지금의 시간을 들여, 과거로부터 미래의 단서를 찾으려는 노력인 것. 어떤 미래는 과거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과 함께, 나도 무언가를 누군가를 어느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기다림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젠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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