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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May 18. 2022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추악한 언론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975년 작

   ... 카타리나 블룸은 학교를 졸업한 후 쿠이르 생활과학아카데미를 거쳐 가정부 생활을 한다. 오빠인 쿠르트 블룸을 통해 방직공인 빌헬름 브레틀로와 결혼하지만 반 년 만에 이혼했다. 이제 막 사회라는 곳에 발을 디딘 한 여성은 언론에 의해 무참히도 짓밟힌다. 그녀의 아무리 건전한 그 어떤 것도, 경멸을 덧댄 타락으로 변질되어 신문에 실린다.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975년 작

  27살의 카타리나 블룸은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정오, 권총으로 베르너 퇴트게스 기자를 살해한다. ‘차이퉁’ 일간지에는 이 살인 사건이 대서특필된다. 사건의 전으로 돌아가 보자. 카타리나는 볼터스하임 부인 집의 파티에서 루트비히 괴텐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아파트로 장소를 옮겨 그와 사랑을 나눈다. 다음 날 아침, 검사와 경찰이 들이닥쳤지만, 괴텐은 없다. 대신 블룸이 연행된다. 괴텐은 은행 강도이며 살인범이라고 한다.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의 자극적인 헤드라인, ‘살인범 약혼녀 여전히 완강! 괴텐의 소재에 대해 언급 회피! 경찰 초비상!’ 투병 중인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전 남편과의 과거사도 상세히 보도된다. 더불어 과격성, 교회에 대한 반감, 사회주의 성향을 강조하는, 본질과는 상관없는 내용까지….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975년 작

  블로르나의 친구이며 사업가이자 유력한 정치인인 슈트로입레더라는 인물은 평소 블룸에게 과한 애정을 표하는 한 편, 비싼 반지를 선물하고 편지도 보내며 그녀의 아파트까지 찾아가 별장 열쇠까지 건네는 등의 구애를 하지만 블룸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암 수술 후 안정을 취해야 하는 블룸의 엄마를 찾아간 퇴트게스 기자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잠입하여 인터뷰를 강행한다. 결국 그 여파로 블룸의 어머니는 사망한다.

  파티에서 만난 블룸과 괴텐은 서로에게 반해 사랑을 한 것뿐이다. 블룸은 자신에게 탈영병이라 말한 괴텐에게 슈트로입레더의 별장 열쇠를 건네며,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아파트를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전한 도주로까지 알려 준다. 블룸이 근무한 블로르나 부부 댁의 트루데 블로르나 부인은 블룸이 사는 아파트를 지을 때 설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아파트 전체의 난방이나 환기, 상하수도 시설 설계도를 침실에 걸어 두었는데, 블룸이 관심을 갖고 살펴본 적이 있었다.

  별장을 습격한 경찰에 의해 괴텐은 잡히고 가벼운 총상까지 입는다. 다음 날, 차이퉁지의 자매지인 주간지 ‘존탁스차이퉁’ 1면에는 ‘사업가의 별장에 숨었던 카타리나 블룸의 다정한 연인’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7, 8쪽에 걸친 방대한 기사가 실린다.


                                                                  (중략)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975년 작

  가정부에게 실추될 명예가 있기나 했는가를 묻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위계 의식을 꼬집는 소설이기도 하다. 경계 없는 사랑을 한, 그것이 그녀의 죄였던 것일까? 블룸은 한 남자를 사랑했다. 하필 그가 탈영병이었을 뿐이다. 물론 남자의 거짓말이었지만….

  범죄자를 사랑한 일 자체를 부도덕으로 몰아간 끝에, 그녀가 어떤 남자에게도 쉽게 열릴 것이라는 가벼움으로 치부했던 걸까? 거절당한 기자가 살아서 돌아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소설의 분위기대로 가정을 해보자면, 직접 만나 보니 음탕한 기운이 있었노라며, 기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내달라는 듯 유혹의 눈빛을 보였다는, 보복성 기사를 쓰진 않았을까?

  그녀는 그냥 사랑을 한 것뿐이니, 스스로에게 당당하다. 그녀를 절벽으로 몰고 간 언론의 표집이 그녀에게 성적 충동을 느꼈다는 건, 언론의 성격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녀의 불행을 하나의 성상품으로 다루고 있었던 것인지도…. 여인은 닥쳐올 파멸을 알고서도 방아쇠를 당겼다. 어쩌면 이미 파멸의 결론이 불을 보듯 뻔했었으니,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범죄자를 사랑하는 여인들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는 텍스트라는 점도 강조한다.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비열하고 악랄하게 공격하는 언론의 민낯을 잘 보여 주는 이야기. 1971년 12월 23일, 은행 강도 사건으로 한 시민이 사망하였는데, ‘빌트’지는 증거도 없이 당시 과격파였던 바더 마인호프 그룹(좌익 테러리스트) 소행으로 보도한 것을 모티프로 한 소설이라고 한다. ...


- <세기의 책>,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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