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편집장 Nov 15. 2022

<아비정전(阿飛正傳)>의 한 장면 - 이해와 오해 사이

소통과 해명

  당신이 보여주지 않는다면 나도 보여주지 않겠노라며 돌아섰던, <아비정전>에서의 장국영. ‘발 없는 새’의 특이성이라고 하기엔,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     


  상대의 곤란함은 생각지 않고 불쑥 찾아왔다가, 저쪽이 먼저 저버린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그 길로 돌아서 가는, 실상 체념의 다른 해석 방식. 그 사이에 나뒹구는, 저쪽에겐 기회가 없는 해명과 이쪽에선 돌아보지 않는 오해. 오랜 세월동안 그 자리에 방치되어 화석처럼 굳어진 오해를, 먼 훗날이 되어서야 기억의 고고학자들처럼 해명하기도 한다.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를 시간에, 오해로 허비해버린 세월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 채 끝이 나버리기도... 애초에 소통을 통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되잖아? 그런데 오해하게끔 하는 상황과 그 오해를 부추기는 사정들이 소통을 방해하는 것이기도... 또한 구차와 염치 사이에서, 서로에게 어떤 해명도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 과거가 현재였을 때 한 번쯤 해명의 대화가 있었다면 그런 오해로 남지 않았을까? 그렇지도 않았을 게다. 일단 분위기가 그렇게 잡히면, 해명은 또 다른 오해로 귀결될 뿐이다. 차라리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이였다면 그렇지 않았으련만, 되레 애증의 관계에서는 물어볼 수 없는 것들. 그리고 스스로의 대답으로 대신하며 돌아서는 순간들. 


  그러나 당신이 돌아선 자리에서 여전히 말이 되지 못한 채, 당신이 돌아서던 그 순간부터 말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해명들. 당신이 돌아서던 그 순간부터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진실들.

  ‘이해와 오해’라는 주제로 출간 준비를 마친 신간, 보도자료만 쓰면 되는데... 블로그에 기록된 기억들을 그러모아 꾸역꾸역 한 편의 글로 만들어내는, 항상 제일 안 써지는 글. 다른 출판사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다반/디페랑스의 경우는, 편집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작가의 이전글 강백호의 점프력 - 천사 채소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