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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Nov 29. 2022

<어린 왕자>의 가로등지기 - 한병철, <피로사회>

글로벌경제

  “금요일이니까 퇴근할 수 있는 사람은 퇴근해요.”

  불타는 금요일, 부장님께서 부서 직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허하신다. 한 직원이 너무 들뜬 나머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을 부장님께 던지고야 만다.

  “부장님은 금요일인데 뭐하실 거예요?”

  돌아온 부장님의 대답은, 저녁이 있는 삶 따윈 진즉에 포기해버린 과잉의 근면과 성실이었다.

  “난 야근해야지. 뭐!”

  퇴근 준비를 하던 직원들은, 홍삼 1포의 위로와 함께 다시 근무 모드로 돌아간다.

윤영선 작가님의 삽화

  이 광고에 대한 사장님의 감응은 어떠하실까?


  “좋아질 겁니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바꾸어 나가야죠. 기업들도 점점 창의적인 업무 방식을 지향하는 추세라, 앞으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게 될 거예요.”


  철학을 즐겨 읽는 기업인에게도 명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이는 어린 왕자가 다섯 번째로 찾아간 별에서 만난 가로등지기와 관련해 여쭤본 질문이었다. 가로등지기에겐 오직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이 소임이다. 그런데 그 별의 자전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현재는 하루의 길이가 딱 1분이다. 1분마다 가로등을 켜고 끄느냐, 가로등지기는 도통 쉴 수가 없다. 어린왕자와의 대화 도중에도 계속해서 가로등을 켜고 끄는 중이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는 글로벌 사회의 가속화 문제는, 점점 빨라지는 사회의 리듬을 따라잡지 못하는 개인의 시간이다. 보드리야르는 이 현상을 자전과 중력에 빗댄다. 너무 빠른 자전 주기로 인해, 한 공간이 지니고 있어야 하는 적소의 중력이 대지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 결과 중력에 묶여 있어야 할 것들이 중력권 밖으로 이탈한다. 개인이 지녀야 할 삶의 의미들은 개인의 가치관 밖으로 이탈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가하는 원심력에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 가속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속도에 맞춘 근면함이 계발되어야 한다. 이것이 산업화가 인류에게 가하는 훈육이다. 휴식조차도 다시 노동을 준비하기 위한 피로회복의 시간이다.


  한병철 교수가 해석하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간(肝)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구미호는 왜 그토록 인간의 간을 탐하는 것일까? 실상 맹수들은 사냥감의 내장부터 먹는단다. 맛이 있어서 먼저 먹는 맹수의 습성에 음양오행의 상징성을 투영한 스토리텔링이라고나 할까? 프로메테우스 신화 내에서의 역할도, 간이 지닌 회복의 기능에 대한 상징성이다. 사슬에 묶여 자유롭지 못한 프로메테우스는, 착취당하는 자아이다. 독수리는 매일같이 날아와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 먹고, 간은 매일같이 회복된다. 한병철 교수의 해석으로는 독수리가 바로 착취하는 자아이다. 자본사회에 속박되어, 계발과 성장의 강박으로 스스로를 매일같이 고무시키면서 결국엔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부조리 속에 간은 파괴와 회복을 반복한다.


  OECD 상위에 랭크되는 노동시간을 우루사의 판매량으로 증명하고, 스트레스를 술로밖에 풀지 못하는 나라. 모든 게 간 때문이다. 그 음주강국에서 숙취해소음료 시장이 이렇듯 활황이라는, 인과인지 역설인지 모르겠는, 하여튼 부조리. 그러나 또 누군가는 비틀거리는 취객들 사이에서 삶의 희망을 지피고, 오늘도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 거리의 불빛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훔쳐다 준 불로 인해 문명이 시작되지만, 역설적으로 인류는 철야의 굴레를 짊어지게 된다. 어두운 거리를 환히 밝히는 빛의 풍요, 도시의 야경이 국격을 대변하기도 하는 시절에, 그 도시의 풍광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밤을 밝히며 잇대는 노동이기도 하다.

  사장님께서 입사한 80년대만 해도 성장일로를 걷고 있던 한국의 경제였지만, 이렇게까지 피로사회는 아니었단다. 사장님께서 신입사원이던 시절, 당신이 기억하는 상무님의 모습은 손톱을 깎거나 신문을 보는 한가로움이었다고... 그 시절에는 과장만 되면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할 줄 아셨단다. 작업환경이 급변하고, 배워야 될 새로운 기술도 늘어나고, 경쟁자도 많아진 요즘엔 임원들부터가 바쁘단다. 사장으로서의 일과도 신입사원 시절에 상상했던 사장의 시간이 아니라고... 그러니 부장과 팀장이 어찌 쉬이 퇴근을 할 수 있겠는가?


  경쟁 상대보다 먼저 출시를 해 고객의 피드백까지 받아보는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 쉴 틈 없이 잇대어져 있는 결정의 순간을 톱니 삼아, 시계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간다. 경쟁이 글로벌화 되면서 효율을 극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효율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그 경제적 현실을 가슴 따뜻한 철학의 위안으로 대신할 수만도 없다는 말씀. 더군다나 결정의 중심에 있는 사장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오늘날 ‘글로벌’이 당면하고 있는 사회문제 중의 하나가 획일화이다. 삼성과 애플은 글로벌이란 단일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겹치다보니, 각자의 영역이란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공동의 창구에서는 비교의 척도 역시 같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더 잘 팔려야 하는 상품으로, 어떻게든 남들보다 먼저 시장을 점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이 지적하는 대량생산시스템의 문제는, 개인에게서 사라지는 고유의 아우라이다. 각자가 지니는 고유의 스토리텔링이 사라지는 시대엔, 바쁘면서 모자란 시간도 대량생산으로 복제가 된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쁘다. 특히나 자본주의의 모순이란 모순은 죄다 작지 않은 크기로 짊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가장 먼저 일어난 글로벌의 ‘증상’이 제국주의가 아니었을까? 하긴 글로벌 시대에 횡행하는 경제대국의 상징적 폭력을 제국주의에 빗대기도 하지 않던가. 벤야민을 필두로 한 당대의 철학 사조는 전쟁으로까지 번진 자본주의의 폐해를 정신분석으로 진단했다. 그 글로벌의 현장에 국경을 넘나드는 공군으로 참여했던 생텍쥐페리, 그가 진단한 미래의 지구가 가로등지기의 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민이언/박상규, 다반, <어린 왕자, 우리가 잃어버린 이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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