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편집장 Jan 11. 2023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 경제 논리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 피지배자는 자연물을 경험할 수 있지만 이 자연물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이룰 수는 없다. “자연물과 자기 사이에 노예를 개입시키는 ‘주인’은 그 때문에 사물의 비자율적인 부분과만 관계하며 사물을 순수하게 향유만 한다. 사물의 자율적 측면은 사물을 다루는 노예에게 넘겨진다.” 노동은 오디세우스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그가 자기 포기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것처럼, 자본가로서 그는 노동에의 참여를 포기해야 하며 결국에는 경영권마저 가질 수 없게 된다. 반면 선원들은 사물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노동을 향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강압 밑에서 절망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은 폭력에 의해 가두어진 의미만을 지니기 때문이다. ... -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김유동 역, 문학과 지성사, p35 -


  큰따옴표 부분은 헤겔의 말이다. 유물론에 ‘변증법’이라는 단서가 붙는, 헤겔 좌파로서의 마르크스를 설명할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사물과의 교감에 더 익숙한 프롤레타리아가 언제고, 이 세계를 지식으로만 이해하는 부르주아를 넘어선다는 ‘행위’의 철학. 현대철학의 대주주 중 하나인 마르크스이다 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겐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신념은 중요했다. 그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 결과가 68혁명이기도 했고... 


  이 시기는 인문학의 왕좌를 점하고 있던 철학에 대한, 경제학의 도전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고...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 대결에서 구조주의 우위로 나아가게 되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사상사적 의의를 지닌 거점이다. 


  오디세우스와 사이렌의 신화에 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해석은 다각적이면서도 그 중심에는 경제학이 있다. 귀를 막고 노를 저어가는 부하들은 자본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들이 고가의 상품이라면, 자신이 만들었어도 그것을 향유할 수 있을 경제수준이 아닐 터,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사물로부터 소외된다는 말이 이런 의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노동자들의 삶과 문화가 세대를 거쳐 재생산된다는 결론까지 나아간다. 이런 ‘갈등 이론’이 오늘날에 더 선명해진 면이 있지? 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 시대라잖아. 


  반면 스스로를 결박한 상태에서 사이렌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오디세우스 같은 경우도 자유로운 건 아니잖아. 오디세우스 스스로 결정한 향유의 모양새이지만, 결국엔 그 또한 속박이라는 것. 사이렌의 유혹은 이미 그 목소리가 들리기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 이렇듯 주체는 담론에 휘둘린다는 것. 라캉과 푸코가 보이지? 부유층들이 더 정신의 문제를 알고 살아가는 현상에 빗댈 수 있을까? 실상 몸이 재산인 계층에서는 정신의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까.

  계몽의 옷을 걸친 경제 논리의 실상. 부르주아는 계몽주의의 수혜를 받은 집단이잖아. 마르크스도 그들의 경제력이 봉건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의 모순이 터져 나온 이후에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도래하는 수순.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상보다 더 유연성과 탄력성을 갖춘 자본의 힘이기도 했고... 노동자 계급에서야 그 계몽이 뭐가 중요한 거겠어. 결국엔 또 다른 지배로, 또 다른 속박으로 이어지는 시대의 ‘지속’일 뿐이었으니까. 


... 시민 계급을 권좌에 올렸던 도구. 즉 제반 힘들의 해방, 보편적 자유, 자율, 한 마디로 말해 ‘계몽’은 시민 계급이 지배 체제로서 억압의 주체가 되자 이 계급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계몽은 그 자체로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최소한의 믿음’ ― 그것이 없이는 시민 사회의 존속이 불가능할지라도 ― 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 -같은 책, p147


  지금의 시대에도 ‘해방’을 외치는 많은 지식들이 그렇잖아. 지식인의 자기 모순은 저 시대의 지식인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작가의 이전글 <더 퍼스트 슬램덩크>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