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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an 19. 2023

닐스 보어 - 햄릿과 <주역>, 양자역학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 보어는 햄릿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신기하게도 햄릿이 여기에 살았다고 생각하면 이 성이 아주 다른 성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성은 돌로 만들어진 것이고, 우리는 건출가가 그 돌을 짜맞춘 형태를 감상해요. 돌, 고색창연한 초록 지붕, 교회 안의 목재 조각품, 성은 이런 것이죠. 햄릿이 여기 살았다는 사실을 듣게 되어도 이 모든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죠. 그런데도 그 사실을 의식하면 이 성은 다른 성이 돼요. 갑자기 담들과 벽들이 다른 말을 하게 되죠. ...”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유영미 역, 서커스, p91 -


  대학생이었던 하이젠베르크는, 당시 이미 물리학계의 석학이었던 닐스 보어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보어가 ‘아직은 어린’ 하이젠베르크를 좋게 보았는지, 다시 한 번 덴마크로 초대해 만남을 가졌을 때의 대화. 양자역학의 전제는, 관찰자의 전제에 따라 관찰된 결과도 달라진다는 거잖아. 과학도 결국엔 관념의 인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경험론 철학자로 분류되는 흄의 지적을 도리어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안은 것. 그 말을 문학과 관련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 또한 과학자에 대한 편견을 지워버리는 일화이기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의 배경을 ‘성지’로써, 순례자의 마음으로 감상하기도 하니까. <슬램덩크>의 애독자들이 가마쿠라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렇기도 할 터, 막상 가보면 다른 도시의 바다와 다를 게 뭐가 있겠나? 후설을 빌리자면 의미 작용이 다른 것. 저기선 해변 도로를 걷다가 세븐일레븐만 마주쳐도,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만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

  보어에 따르면. 물질의 입자는 추상적 개념이며 입자의 성질은 다른 입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정의되고 관측된다. 이걸 <주역>의 64괘로 설명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특정 괘나 효가 전체 속에서 어떤 조건인가에 의해서만 구체적인 의미를 드러내지, 본질은 그저 음양인 거잖아. 사주팔자도 이런 원리. 글자 자체 보다도 글자들 간의 관계가 중요한 것. 그러니 어떤 글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글자도 중요한 것. 그 사이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때문에 양자역학과 관련해 <주역>이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하신 역술가 분들 중에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보어는 과학 분야에서의 공로가 인정되어 덴마크 기사작위를 받았는데, 그 문장(紋章)을 태극으로 선택했다.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인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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