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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편집장 Jan 30. 2023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나치와 원자폭탄

소립자와 플라톤 철학

  “... 하지만 이제 나는 그냥 유럽에 남아 과학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주변에 모아 데리고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이들이 다시금 독일 과학계를 재건하게끔 돕기로 결정했어요. 이런 젊은이들을 내버려두고 떠난다면 배신하는 기분이 들 거예요. 젊은이들을 우리와 달리 이민이 쉽지 않아요. 쉽게 자리를 얻을 수도 없고요. 그들이 그런 형편인데 나만 특권을 활용하는 건 어쩐지 불공평하기도 해요. 전쟁이 그리 길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요. ... ”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유영미 역, 서커스, p278 -


  “... 어떤 일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여기서 히틀러와 나치가 악한 것인지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미국 츨도 모든 맥락에서 볼 때 선할까?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선인지 악인지는 그들이 상용하는 수단으로 미루어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 - 같은 책, p295 -


  그런데 1945년 8월 6일 카를 비르츠가 내게 오더니 방금 라디오에서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처음에 이런 본도를 믿지 않으려 했다.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 것이라고, 족히 수십억 달러는 들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그렇게도 잘 아는 미국의 원자물리학자들이 전력을 다해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믿기지 않았다. ... 나는 내가 25년간 몰두해온 원자물리학의 발전이 수십만이 넘는 인명을 앗아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같은 책, p314 -


  카를 프리드리히가 말했다.

  “여기서는 발견자와 발명자를 기본적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봐요. 발견자는 기본적으로 발견 전에는 그 발견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알지 못해요. 발견 뒤에서 실제적인 활용까지는 길이 멀어서 예측이 불가능할 수도 있고요. ...” - 같은 책, p318 -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독일에게선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후학들의 미래를 위해, 독일에 남아 나치에 협력했고, 핵무기보다는 핵발전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는, 어쩌면 변명. 하이젠베르트가 협력에 적극적이었다는, 몇몇 동료들의 회고도 있다. 누구의 기억이 맞을까? 알 수 없지. 누구에게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기제가 있으니까.


  여튼 나치에 협력한 이유로, 그는 연합군 측에 체포된다. 그때 원폭 기사를 접한 것. 그리고 니체의 뉘앙스로 선과 악에 대한, 그리고 마르크스의 뉘앙스로 과학자들의 책임에 관한 이야기를...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헤겔의 변증법을 뒤집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역사가 항상 발전의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때로 그 발전이 되레 퇴보의 원인이기도... 이로써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것. 과학의 발전이 꼭 진보의 시대로 이끌었는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지. 지금 시대의 몇몇 경우들만 보아도, 지식의 발전이 꼭 의식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 이로써 불확정성에 관한 이야기를 물리적 세계에 국한되지 않는 인문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부분과 전체>인 연유는 마지막 챕터인 ‘소립자와 플라톤 철학’에서 설명된다. 과학은 전체의 관점에서 체계와 원리를 말한다. 물론 플라톤 철학도 그런 면이 있지.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으로나마 니체의 관점주의가 나올 수 있는 잠재태이기도 했던 것. 부분과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세계는 사실들의 합’이라는 비트겐슈타인도 은근히 비판을 한다. 삶은 실증과 실용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부분과 부분의 사이를 채우는 불확정적 '바깥'의 작용력과 함께 어우러져 전체가 된다는 것. 그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이다. 부분의 기관들의 합으로만 설명되진 않잖아. 


  소립자의 세계도 그렇다는 거야. 전체를 대변하는 일관된 원리로만 설명되지 않는... 때문에 과학과 비과학의 만남을 통해서만 양자역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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