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나 아렌트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죽었다, 이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이데거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첫 강의를 시작할 땐, 항상 이런 식의 말을 먼저 학생들에게 건넸단다. 한문의 문체에서는 ‘행장(行狀)’이라 부르는 것. 즉 그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았으며, 언제 죽었는지에 관한 썰들. 그보단 그 철학자가 어떤 사유를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
물론 그런 행장의 지식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하이데거의 철학이 후설의 영향권 안에 있는 건, 그가 후설의 제자이면서 조교였기 때문일 테니... 또한 그가 왜 나치에 협력했는가의 질문도 그가 처해 있던 정치적 입장을 함께 고려할 필요는 있을 테고...
철학자 자신에게는 그 행장이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의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 순간의 선택으로 영원히 고통 받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그나마 하이데거는 철학사에서의 그 독보적인 입지로 인해, 그의 사유 자체는 용인이 되는 경우. 그러나 철학사는, 그의 제자이며 한때나마 연인이었던, 나치 복역자들에게 ‘생각하지 않은 죄’를 따져 물었던, 아렌트의 워딩을 더 고결하게 기억한다.
- <순간을 바라보는 방법>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