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질료
"소설가는 자신의 생애라는 집을 헐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다." - 프란츠 카프카 -
카프카의 작품 세계로 설명한다면, 현실을 짓이겨 다시 지어 올린 초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후에나 그 유고들이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실상 카프카의 생애는 모든 것이 미완성이었다. 실상 어느 문인인들 스스로의 인생을 완결로 이야기하겠냐만, 카프카에겐 너무 짧았던 40년의 세월. 우울한 날들에 관한 알레고리도 실제적 삶으로 체험한 작가 자신의 초상이었다. 현실에서는 끝내 닿을 수 없었던 것, 그 완성에로의 열망이 항상 현실의 경계 너머를 내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또한 치열한 현실을 동력으로 하는 환상으로의 여정이었다.
작가의 전 생애가 질료라면, 또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글쓰기의 글감을 고민하는 순간보다, 글감이 될 만한 순간들을 가득 체험할 수 있는 생활체계가 앞서야 하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소설가로서 살고자 한다면, 소설처럼 살아야 하는 것. 고독과 소외, 타락과 방황, 후회와 참회, 일탈과 이상이 갈마드는 전 생애가 하나의 천칙이다.
전지적 시점도 1인칭의 시점에서 비롯되는, 결국엔 작가 자신의 삶을 경유하는 타자화일 터. 그러니 책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요, 들어앉아 상상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차라리 책의 바깥에서 사랑하고 이별하는 순간에 다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장들이 난데없이 쏟아져 나오지 않던가. 그렇듯 ‘쓰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은 ‘살기’에서 발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