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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넷 Jan 07. 2024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오직 ’ 쓴다 ‘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내가 아는 단어와 문장의 조합으로 하나의 거대한 퍼즐을 완성하는 작업 같다. 멋진 퍼즐이 완성되면 그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 자랑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수많은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까지의 시행착오는 이미 겪어 봄으로써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기에, 첫 조각을 들기까지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 ‘소설가의 일’을 완독 했다. 글에서 작가는 [작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쓴다’는 동사일 뿐이며,  ‘잘 쓴다’도 ‘못 쓴다’도 결국에는 같은 동사일 뿐이다. 잘 못 쓴다고 하더라도 쓰는 한 그는 소설가이다]라고 말한다. 글 쓰지 않는 자를 작가라 부를 수 없듯이,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자명한 얘기다. 나는 언젠가 작가로 불릴 수도 있는 아스라이 먼 미래를 그려 보지만, 매일 쓰는 습관은 아직도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매일 쓴다는 건 왜 어려운 일일까?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오로지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나만 보기 위해 쓰는 글은 소모적인 일로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나는 글을 쓰는 행위보다, 내가 쓴 글을 남들과 공유하는 행위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부류인가 보다.)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글을 쓰려다 보니 알맞은 글감 찾기가 녹록지 않다. 오로지 내가 쓰고 싶은 주제로만 글을 쓰자니, ‘남들이 이런 주제 따위에 관심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물론 유명인이라면, 가진 생각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겐 흥밋거리겠지만, 나는 그저 지나가는 행인 1에 불과하지 않은가…

 또한 보여지기 위한 글을 쓸 때는 100% 솔직한 내가 되기 어렵다. 젠체함과 당당함보다는 솔직함과 겸손함이 더욱 매력적이라 여기기에, 글에서도 나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나를 낮추는 표현을 쓸 때가 있지만, 그 조차도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포장일 때가 많다. 그리고 나만 아는 나만의 추악한 사고나 길티 플레저를 글로 공유하기엔 아직 잃고 싶지 않은 게 많고, 그만큼 나를 내려놓지 못했다.

 또 요즘 내 생활에서 글감이 될만한 자극이 많지

않다. 학부시절엔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자 학문적 자극이었기에 쓰고 싶은 글감의 원천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하지만 6년 차 직장인의 삶이란 매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사람들과 술 마시고, 집안일을 하다 잠에 드는 일상의 반복이다. 그 안에서도 글로 쓸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이 있을 테지만, 그건 타인이 연루된 일상이기에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에나 적합하다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을 글로써 창조해보자니 핍진성의 장벽에

매번 부딪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란 신이 아닐까? 어떻게 한 두 명도 아닌, 여러 인물에 숨을 불어넣어 입체적인 생명들을 탄생시켜 나가는지…

 초등학교 5학년때 통일 글짓기 대회에서 통일부 상을 수상한 이후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해 글쓰기로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어쩌면 그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글로써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면서 더욱 확실해진 것은 나는 글을 쓸 때보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어 줄 때 더욱 행복하다. 그러기 위해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매일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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