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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넷 Jan 13. 2024

행복이와 나

너의 남은 생은 행복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 때

 기분 좋은 봄바람과 함께 발걸음 마저 산들산들 가벼운 4월의 퇴근길이었다. 근무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오늘의 저녁 메뉴. 두 손에는 파스타 재료와 와인이 있었고, 근사하게 차린 저녁 식사와 함께 넷플릭스 한편으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빌라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아름답기만 했던 나의 퇴근 후 일상엔 큰 파열이 일었다. 각 세대에서 분출된 쓰레기더미 위엔 조그마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숨을 잃은 듯 쓰러져 있었다. 서울이라는 메가 도시에서 수많은 동물들과 터를 같이하며 살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죽은 동물을 본 기억은 머릿속을 헤집어봐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대도시 서울 시민으로서 흉물스러운 광경 따윈 보지 않을 권리를 누리고 있기라도 하듯. 그랬기에 죽은 듯 배를 보이며 뻗어있는 아기 고양이를 목도했을 때의 기분은 불쾌에 가까웠던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론 죽어서도 쓰레기

더미 위에 쌓여 있는 고양이의 생애가 수참했다. 그런 고양이의 시신이라도 거두어 주려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고양이는 몸을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러다 나의 인기척을 확인하고는 빌라 뒷길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잠깐 본 고양이의 상태는 말 그대로 남루했다. 심한 구내염에 혀는 입 밖으로 나와있고 입 주변은 침으로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루밍을 한 게 언제일지 털은 볼품없이 엉켜있었고, 틀림없이 오랜 기간 굶었을 터, 육안으로도 뼈가 앙상했다.

 서울에 살면서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만났지만 한 번도 그들의 생에 개입해 본 적은 없었다. 거리에서 그들의 삶이 어찌 나보다 불행하다고 타자화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구심으로 어쩌면 나의 무관심을 정당화해 온 것 같다. 하지만 이 고양이는 달랐다. 자신의 삶이 마지막에 왔음을 직감하고,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자신의 몸을 뉘어, 마지막 구조를 요청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곧장 동네 동물 병원으로 가, 처방받은 구내염 약과 함께 습식 캔을 들고 고양이가 있던 분리수거 장으로 갔다. 고양이는 없었다. 하지만 난 고양이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직감하여 습식캔에 약을 타서 그 자리에 뒀다.

 몇 분 후 고양이가 다시 나타났다. 나는 기둥뒤에 숨어 숨죽인 채 고양이를 지켜봤다. 얼마 만에 먹은 음식이었을까. 고양이는 허겁지겁 캔에 혀를 갖다 대었고, 얼마 안 가 염증으로 잠식된 입속과 목구멍에 음식이 닿았을 때는 피를 토하며 고통스러워했다. 두 앞발로 목을 부여잡으며 캑캑거리는 고양이의 모습에 내 몸이 베베 꼬였다. 그 아픈 와중에도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빌라 뒤편으로 금세 사라졌다.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상당해 보였다. 그 후 나는 매일 그 자리에 약을 탄 음식을 두었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때도 음식만은 사라진 걸 확인하며 고양이와 교감을 나눴다. 그러다 한 번씩 내 눈앞에 나타날 때는 또 상태가 많이 나빠져 있었다. 마치 내가 자신을 케어하고 있음을 알기라도 하듯 말이다. 열 보 이상 가까이 다가가 본 적 없음에도 고양이는 내 삶에 큰 부분이 되었다.

너는 내 삶에 스며들었다

 얼마 지나 장마철이 되었다. 빌라 뒤편에 고양이가 비를 피할 수 있게 작은 집을 설치해 두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고양이가 잠시라도 쉬어 갈 수 있길 바랐다. 퇴근 후 고양이 집 주변을 정리하고 밥을 놓고 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꽤 오랜 시간 고양이의 동선에 개입하여 조력했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중에는 고양이가 내게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보다도, 고양이가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 8월이 되었고, 결혼을 앞둔 나는 신혼집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고양이가 걱정됐다. 내가 떠나면 고양이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구청이나 동물연대에 구조를 요청해 봤지만, 길고양이는 야생동물로 분류되어 포획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동물을 반려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에는 상당한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내 인생에 반려동물은 없다고 수없이 다짐해 온 나였는데, 이사를 이틀 앞둔 밤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배우자는 나보다 훨씬 동물을 사랑하고, 아픈 동물들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나의 고민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저 아픈 고양이를 홀로 두고 갈 수 없어 우리의 새 보금자리로 데려가는 납치를 결정했다.

너의 행복은 나의 욕심이었나

 우리 힘으론 도저히 불가능해 인스타그램을 수소문하여 고양이 탐정을 섭외했다. 고양이 탐정은 몸에 많은 상처와 타투가 있었고, 어색함을 타개하려는 나의 상투적인 질문 공격에 퉁명스러운 답변만 주었다. 온화한 동물 전문가를 떠올린 나의 기대와 간극이 있었다. 그는 빌라 주변에 포획 틀을 쳐놓고, 틀 안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온갖 음식을 넣어 두었다. 설치 후 세 시간이 지났을 때 고양이는 몇 분 후 닥칠 일을 전혀 모른 채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금의 의심도 없이 포획 틀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고양이 탐정은 몇 시간 전 내가 대화 나눴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바뀌어 눈물을 머금은 채

“아이고 우리 아가 야윈 것 좀 봐, 어떡해 “라는 말을 연발했다. 마치 고양이에게만 연대감을 느끼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고양이 같았다.

 생각보다 손쉬운 납치극이었다. 고양이 탐정은 전문가답게 포획틀을 검정 천으로 감싸서 고양이를 진정시켰다. 천을 살짝 들었을 때 처음으로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다. 매번 힘없이 감긴 눈만 보았는데 놀라서 한껏 확장된 동공으로 나를 응시하는 고양이의 눈이 너무 예뻤다. 고양이 탐정은 근처에 거주하는 고양이 쉼터 소장을 소개해주었다. 한달음에 뛰어온 소장은 근처 동물 병원을 소개해줬다. 고양이탐정과 쉼터 소장은 초보 집사 부부가 너무 대견하면서도 걱정되는지 쉬지 않고 팁을 전수해 주었다. 하지만 내 귀엔 그 이야기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막상 고양이를 포획하고 보호자로서 내원을 하고 나니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병원에서 고양이의 이름을 물었다. 잠시 고민 후 행복이라고 답했다. 고양이의 남은 묘생이 그저 행복했으면 했다.

너의 세상을 가진 게 무서워졌다

 그렇게 포획틀안에 행복이를 넣어두고, 행복이의 진료를 기다렸다. 몇 분 후 진료실에서 포획틀의 문을 열자마자 행복이는 날개라도 달린 듯 진료실 안을 날아다녔다. 창자가 끊어질 듯 하악질을 해대며 여기저기 머리를 처박아 피가 흐르는대도 온갖 힘을 다해 만져지길 거부했다. 행복이를 보며 마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만든 괴물을 처음 본 것처럼 공포와 후회가 밀려왔다. 저 야생의 피가 흐르는 생명체와 앞으로 함께 할 수 있을까.

 행복이는 암컷 고양이로 체구가 너무 작아 나이가 가늠되지 않지만 1~2세로 추정된다고 했다. 검사 결과 예상대로 심각한 구내염을 앓고 있었다. 구내염이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발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수술 전까지 행복이는 병원에 입원하며 영양주사를 맞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린 행복이를 맞을 준비를 했다. 방묘창을 달고, 캣 타워를 설치해 두었다. 행복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면회를 갔다. 행복이 케이지에는 a4용지로 ‘접근 금지’, ‘조심’ 등의 문구가 쓰여있었다. 행복이 전담 간호사의 팔에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생채기를 보고, 행복이의 공격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행복이의 눈에는 나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해 보였다.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되어 자신이 두려워해 마지않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둬지게 된 행복이의 처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며칠 후 행복이의 수술일이 되었다. 의사는 행복이를 키울 건지 다시 방생할 것이지 제차 확인했다. 방생한다면,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송곳니 정도는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린 주저 없이 방생할 일은 없다고 답했고, 그렇게 행복이의 전발치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 다음 날 행복이가 퇴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케이지 안의 행복이는 조용했다. 방안에 케이지 문을 열자마자 행복이는 캣 타워 제일 아랫칸에 몸을 숨겼다. 몇 시간이 지나서도 꼼짝 않는 행복이에게 시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방문을 살짝 열어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의 자만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날 새벽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갔다. 행복이가 주방 싱크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아내를 깨워 거실로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자 행복이는 환기시키려고 살짝 열어둔 주방의 작은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찢은 채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곳엔 차마 방묘창을 설치하지 못했다. 쉼터 소장의 초보 집사에 대한 우려가 그대로 적중한 순간이었다. 아내는 오열하며 창가로 뛰어갔다. 행복이는 아직까지 난간에 있었다. 공포에 몸을 떠는소리가 거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행복이를 어떻게든 집안에 불러들이려고 창문을 열어젖혔다. 찰나였다. 행복이는 3층 건물에서 아래로 유유히 몸을 던졌다. 곧장 1층으로 내려가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행복이를 찾지 못했다. 온갖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어쩌면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행복이었다. 어느 날 몇 번 밥을 챙겨주었다는 알량한 이유로 신이라도 된 듯 행복이를 납치하고 행복이의 터전을 영문 없이 옮기고 행복이의 이를 모두 뽑아버렸다. 어쩌면 죽어가는 고양이를 알뜰살뜰 돌보았다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아내는 며칠간 우울증 비슷한 것에 시달렸다. 여기저기 전단을 돌리고, 고양이를 찾아다니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지새웠다. 우리의 결혼식은 채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 역시 복잡한 마음이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다가도 제 발로 뛰쳐나간 행복이의 선택에 마음이 후련하기도 했다. ‘야생의 삶이 길어 집에서는 도저히 불안했나 보지 뭐…’ 하고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회피하려 했다.

결국 너는 내 운명

  뉴스에서 연신 폭우주의보가 흘러나왔다. 행복이가 더욱 걱정됐다. 이도 없이 어디서 끼니라도 연명하고 있을까. 착잡한 마음에 캔맥주를 사러 나갔다. 웬일인지 처음 가보는 길에 있는 편의점 쪽으로 발걸음이 갔다. 운명의 장난처럼 행복이가 있었다. 행복이는 전봇대 아래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허겁지겁 헤집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기 전 행복이는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의 안위에 문제가 생기기 직전 행복이는 내 눈앞에 나타난다. 순간 돌아가신 할머니의 재림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기가 차서 웃음이 났다. 아내는 내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행복이도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우린 여느 때처럼 꼭 열 보 거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응시했다. 어디로보나 행복이가 분명했다. 우린 다시 고양이 탐정을 불렀다. 그때 그 도구들을 들고 고양이 탐정이 왔다. 두 번째 납치극은 순탄치 않았다. 새벽 세시가 넘어서 행복이가 포획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번 행복이를 놓친 우리는 만반의 준비 끝에 행복이를 새로 맞았다.

나는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이가 가족이 된 후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내가 고양이 털 알레르기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거실에 한 시간 이상 머무르면 천식환자처럼 쌕쌕 숨소리를 내뱉는다. 그럴 때마다 내 무모한 선택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내에게 행복이는 산고 끝에 잉태한 생명처럼 귀하디 귀한 존재이다. 최고급 사료에 다섯 가지 영양제를 골고루 섞어 매일 수라상을 올린다. 최고급 모래의 화장실도 행복이가 누리는 특권이다. 우리와 함께 한 일 년 동안 행복이의 구내염은 사라졌다. 털에는 윤기가 흐르고 뱃살은 축 늘어져 땅에 닿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행복이는 우리의 손을 피한다. 아직까지 우릴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며 행복이가 길에서 누군가에게 학대당했을 것이란 짐작을 조심스레 해본다. 또 한편으론 비루하다 여겼던 행복이의 세상에 내가 알 수 없는 행복이만의 행복이 있진 않았을까라는 걱정도 해본다. 행복이도 누군가의 엄마이진 않았을까. 누군가의 사랑받는 딸이진 않았을까. 내가 행복이의 행복을 모조리 앗아가진 않았을까. 그래서 더욱 행복이의 행복을 바라게 된다. 몰아치는 폭우에도 걱정 없이 낮잠을 자고, 자기 취향의 사료가 아니면 입도 대지 않는 행복이를 보면 삶에 희망이 몰아친다. 나는 그저 행복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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