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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insing May 24. 2018

업무 중 잠시 만난 여신

#10. 정결한 여신 혹은 Casta D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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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전혀 감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하곤 한다.

아마 이 글을 썼을 때의 내가 아마도 그런 상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때가 바로 그런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글을 쓰고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내 인생에는 크나큰 시련이 다가왔지만 글을 쓰던 그때는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졌다. 


그랬기 때문에 이 글은 지금 읽어봐도 당시 나의 안일했던 일상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역과 관련한 일을 올해로 벌써 18년 넘게 하고 있다. 


값싼 물건을 구해서 파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물건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또한 싼 가격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래서 무역일을 하다 보면 꼭 자신이 자주 다루게 되는 배 (선박)를 만나게 된다. 

▼ 예전에 석유화학 일을 했을 때 만난 배 중에도 참 예쁜 이름들이 많았다. 


뉴질랜드 어딘가의 지명이라는데 이름이 'Rere Moana'인 배도 있었고, 'Southern Mermaid'라는 배 이름도 있었다. 

전자는 발음이 너무 매끄러워서 여직원에게 '렐레 모아나 어딨대?'라고 물을 때엔 주위 사람들이 무슨 비밀 얘기나 하는 듯 신기해했다. 

후자는 항상 물건을 받을 때 남쪽 어딘가에 사는 인어가 헤엄쳐 오는 상상을 한 일도 있었다. 

최근 들어 내가 담당하는 배가 이젠 5척을 넘어서니.. 슬슬 어느 배가 누구 거인지 파악하기도 만만찮아 나를 도와주는 물류 담당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어떤 배는 이렇게 돼있고 어떤 배는 저렇게 설명을 죽 하는데 그녀가 말한다. "Casta Diva는 말이야..." 최근에 브라질산 물건을 일본의 누군가에게 팔았는데.. 그 물건을 싣는 배 이름이 Casta Diva라는 거였다. 


훔.. 정결한 여신이라는 배를 만났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Casta Diva라는 곡을 아느냐고.. 그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Casta Diva는 브라질 물건을 실어 나를 배 이름이라고.. ㅡㅡ"" (로맨틱도 하셔라..)

https://youtu.be/TYl8GRJGnBY

Casta Diva (Maria Callas)

A beautiful performance of Casta Diva

www.youtube.com      


▼ 마리아 카라스가 부른 버전이 잘 알려져 있고, 일상적으로 우리가 광고 등에서 많이 듣는 오페라의 아리아다. 


우울하거나 힘이 없을 때 멀리서 들리면 왠지 울면서 기도를 할 것만 같은 느낌의 이 곡은 어떤 곡일까 싶어 조금 찾아보던 와중에 이 곡이 이렇게도 구슬프게 들리는 이유를 알듯했다. 

이 곡은 베르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1막에 나오는 아리아라고 하는데.. 


노르마의 내용을 보니 로마와 대립하는 한 부족의 여사제장이 로마의 총독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둘이나 숨겨가며 키우고 있었는데 로마의 총독이 자신과 같이 생활을 하는 다른 여사제인 아달지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부르는 곡이라고 한다. 


정결한 여신이라는 제목만을 보고, 그저 여신에 대한 묘사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겨나갔다. 

이 곡에서 노르마는 정결한 여신의 칭송을, 로마와 전쟁을 하자는 사람들에게는 자제를,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는 돌아올 것을 노래한다. 


아이러니한 건 정결한 여신을 운운할 입장이 되지 못한 그녀가 부르는 Casta Diva여서인지 더욱 애절하고, 더욱 구슬픈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신을 돋보이게 하는 그녀의 슬픔과 어두움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마치 흰색을 더욱 희게 만들어주는 검은색과 같이 말이다. 

▼ 이렇게 큰 슬픔을 가진 그녀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큰 뉘우침으로 두 사람은 결국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매우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오페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결한 여신이 그녀를 보우하셔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르마는 자신의 최후를 자신이 사랑했던 사내와 함께 할 수 있는 행복을 가지게 되었다. 

움.. 이 정도의 힘을 지니신 정결한 여신이 실어 나르는 물건은 아마도 별문제 없이 브라질을 떠나 대서양과 태평양을 지나 나의 거래선에 도착을 할 것이고, 언젠가 다시 그녀(영어로 배는 여성이다)를 만날 때면 좋은 느낌으로 내 물건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잠시 웃어본다. 

By 켄 in 싱갚 ('14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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