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영문도 모르고 누리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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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영문도 모른 채 무언가를 누리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매일 컴퓨터를 사용해서 일을 하고, 장난을 치고, 놀기도 하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 자판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지? 윗사람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바탕체는 누가 만든 것인지? 는 따지고 살지 않는다.
▼ 지난 금요일 경기도 파주 안그라픽스 사옥 1층 로비에서 전시한 '최정호 전'을 보러 갔다.
그는 우리가 매일 쓰는 명조체, 고딕체, 굴림체를 만들어낸 사람인데.. 사연인즉 이렇다.
1955년, 동아출판사의 김상문(金相文) 사장이 벤톤 활자 조각기를 도입하면서 최정호 씨는 서체 원도 제작을 의뢰받아 원도를 제작했다.
이후 일본의 메이저 사진식자기 제조사인 모리사와와 샤켄은 각사의 인쇄기를 한국에 팔아야 했기 때문에 인쇄기에 사용될 한글 원도의 디자인을 최정호에게 의뢰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동아출판사의 원도가 샤켄에, 삼화인쇄의 원도가 모리사와에 전해지고 두 회사의 사진식자기가 국내에 널리 공급되면서 최정호의 서체도 널리 보급됐다고 한다.
▼ 전시를 보면서 폰트의 이름에 모리사와 명조, 샤켄 명조라고 되어 있어서 나는 속으로 '아니 폰트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했었지만 속사정은 다행히 그리 비참한 것은 아니었다.
굳이 비참하다고 말하자면 당시 '사진식자기'라는 신식 인쇄 기계를 만들 생각을 한 기업은 이 땅에 없었다는 것이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개인기 (그의 개인기는 디자인과 외국어였다. 실제로 그는 일본의 요도바시 미술학원에서 수학했고, 한국으로 와서는 인쇄소 사업을 했다.)로 충만했던 최정호는 일본 메이저 인쇄기 제조 사을 향해 자신의 폰트 디자인에 대한 기술을 가지고는 그대로 하이킥을 날렸고, 이 하이킥은 그대로 들어갔던 것이다.
몇몇 디자이너들은 굴림체를 샤켄社의 나루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여 사용을 꺼려했다고 하나 샤켄社의 나루체의 한글 버전이 굴림체이고, 한글 버전은 최정호가 만들었다고 하니 엄밀히 말하자면 굴림체는 샤켄의 나루체가 아닌 나루체를 최정호의 방식으로 해석한 한글 폰트인 것이다.
▼ 1978년 8월 9일 자 꾸밈 11호에 '나의 경험, 나의 시도'라는 글에 최정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이 분야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무렵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혔었다.
이렇다 할 스승도 없었고 특별한 참고서적도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나의 이러한 전철을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젊은 이들에게도
똑같이 되풀이되길 원치 않기에 그들에게 조그마한 길잡이가 되고플 따름이다.
나보다 훨씬 유능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보다 아름답고 세련된 한글을 만들어주기
바라면서 두서없는 졸필을 적는다."
그의 글자체로 만들어진 판화에는 '기지도 못하는데 날려고 기교를 부리는 것은 금물이다.'이라고 새겨있다.
▼ 나 자신의 끝없는 모자람과 게으름을 깨닫기에 충분한 전시회였다.
기뻤던 것은 누군가는 그의 위대한 업적을 잊지 않고 파주의 아늑한 회사 한 귀퉁이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쁘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가끔은 영문도 모르고 누리는 무언가에 대해서 그 영문을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영문'이라는 순우리말이야말로 우리는 그 단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영문조차 모르면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By 켄 in 파주 출판단지 (안그라픽스) ('15년 11월 8일 일 - 최정호 전 마지막 날)
파주에 갔으니 맛집을 빼놓을 수 없길래 근처에 맛난 닭볶음탕 집을 하나 개발해 놓았다.
닭볶음과 묵은지가 너무나도 귀중하게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파주 갈 일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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