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권에 대한 생각

그럴싸한 얘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한다는 것의 의미

by Keninsing

최근에 뭔가를 새롭게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개발의 어려움을 알고자 신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사회상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고 있다.

사실 이인직의 '혈의 누'라는 작품이 매우 유명하지만, 최근에 내가 읽게 된 것은 약간의 비주류 작가들의 작품으로 춘원 이광수의 절친한 친구였던 김정만의 '신세계'나 김형식의 '홍의 성'과 같은 작품을 읽고 있다.


▼ '취권'이라는 영화는 1978년 작인데 나는 아주 최근까지도 취권이라는 권법은 중국 5천 년 역사 속에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아주 유명한 권법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중국 역사 속에 술에 취해서 무술을 한다는 설정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가 1978년에 영화에서 본 취권은 중국 역사 어디에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가 본 취권의 모습을 만든 건 누굴까? 당시 24살의 나이로 원화평 감독과의 두 번째 영화를 제작한 성룡이다.

https://youtu.be/j4Y62DGkyXw


▼ 영화를 보면 매우 그럴싸한 설정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취팔선권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여덟 신선이 취했을 때의 모습을 본떠 만든 권법이라는 설정이고, 마치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면서 적에게 빈틈을 보이다가 순발력을 발휘해서 적을 공격한다. 게다가 취한 기운으로 상대방을 치는 것이어서 그 파괴력 또한 대단하다.

오케이... 오케이... 알겠다... 알겠는데... 재미있는 영화 속에 빠져들기 전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한 번 해보자는 말이다.

▼ 그러면 '취권'을 연마하는 문파의 사형, 사제들은 모두 술을 한 동이씩 연습장에 준비해두고, 이를 조금씩 마셔가면서 운동을 하면 되는가?

만약 다른 문파의 무술이 술을 마셔가면서 하는 무술만도 못하다고 한다면 그 문파 사람들은 과연 가만히 앉아 있을까?

그 이전에 술을 마시면서 연습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대련하다가도 "사형! 한 잔 더 하시죠. 펀치에 위력이 조금 떨어진 듯합니다." 뭐 이런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건가?

https://youtu.be/Q4_EoYlzsN0


▼ 살다 보면 꽤 그럴싸한 얘기들이 있다. 얼핏 들으면 함빡 빠질 정도로 좋은 얘기들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매일 피와 땀을 흘리며 연습하던 문파의 문하생을 술이나 마시면서 연습하던 취권 연마생이 도대체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상상 속에서나 빙긋 웃을 수 있는 권법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면서도 1978년 이후로 계속 중국 5천 년 역사 속의 권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성룡의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굳건히 믿었거나 뻔한 상상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취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사람은 술을 먹으면 뭔가를 바로 잡고 싶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일례로 언론인이었던 울 아부지의 경우 술을 드시면 꼭 영어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읽으라 하셨다. 이 시간은 나에게 크나큰 공포의 시간이기도 했고 말이다. ^^
그때마다 엄니는 말씀하셨다. 그런 식으로 가르쳐서 애들 서울대 가겠다면서 좋아라? 하셨다. ^^


▼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다 보다.

그럴싸한 얘기도 이젠 정신을 차리고 듣게 되고, 술 한잔 먹고 뭔가 바로 잡자는 생각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깨닫는 듯하니 말이다.

지난주 토, 일요일에는 아무 생각 없이 65㎞, 45㎞씩 라이딩을 했다. 비가 온 후라서 공기는 매우 상쾌했고, 좋은 기분이었다.

자전거를 타며 취권 생각을 하며 다시 깨닫는다. 세상에 술도 먹으면서 무술도 연마하는 방법이 있기는 쉽지 않고, 술 취한 상태에 뭔가를 바로 잡으려고 하지 말자.

결국, 뭐든 꾸준히 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달으며 페달을 힘껏 밟는다.


▼ 아... 참.. 그리고 신소설 작가 중에 김정만이나 김형식이라는 사람은 없다. 물론 '신세계'나 '홍의 성'과 같은 작품도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어려움을 알기 위하는 것이라면 굳이 옛날의 신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의 앞을 읽으면서 '에이~ 그런 소설이 어딨어?' 하지 않고, '그 친구 참 독특한 취향을 가진 친구네'라고 생각한 친구가 있었다면 그건 이미 내가 만들어 놓은 엉터리 방터리 신소설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

그만큼 세상에는 엉터리도 방터리도 많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 아닐까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By 켄 in 세종대로

('16년 7월18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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