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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Jun 30. 2020

활기와 더위 속 낭만의 정체

평일 낮 찜통 더위속 방산시장에 가다

종로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시장 맞은편엔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방산시장이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포장재 도매시장인 이 곳을 방문한 것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평일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자재를 실어 나르는 지게차, 손수레, 일하는 사람들 외에 방문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와 동료들은 화장품 용기 샘플을 구매하려던 목적이 있었으므로 정한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주변 풍경이 낯설어 자주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방산시장의 일상은 늘 바쁘게 돌아가지만 가게들은 그 자리에 계속 있었을 것인데, 몇 달 전의 방문을 포함해 초행길이 아닌데도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정적인 골목을 채우는 물류의 활력이 야바위꾼의 현란한 손놀림처럼 실체를 가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낯섦이 익숙한 시장의 단편.


사실 이 날 방문은 썩 바라던 바는 아니었다. 현장 답사가 굳이 필요한가 싶었다. 의심 많은 매니저의 궁금증 하나 때문에 방문한 방산시장의 화장품 용기 도매상에서 결과적으로 우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사실 제품을 기획해 판매하는 사업이 아닌, 그 원료를 취급하며 첫 자체 제품 출시를 앞둔 시점에선 경험 있는 화장품 제조사나 마케팅 파트너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이러저러 상황도 답답한데, 햇빛은 왜 이렇게 또 뜨거운지. 연일 계속되는 때 이른 폭염에 몇십 걸음 안팎에 모두 모여 있는 작은 구획을 걸어도 땀이 흐른다. 


그러다 발견한 입간판 하나.



이 곳에 처음 들른 많은 이들은 아마도 많은 염려가 있을 것이다. 알고 찾는 사람은 덜 손해 볼 것이고, 어설픈 단골은 먹잇감이다. 그래서 발품을 팔지만, 특별한 노하우 없이는 들이는 노력 대비 성과는 수월치 않다는 것은 오랜 상권의 법칙과도 같다. 머리싸움 말고, 차라리 솔직해지는 것이 더 잘 통하는 동네. 작은 카페 혹은 쇼핑몰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이 곳을 찾는 이유는 명확하므로, 많은 이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를. 속 시원한 상담을 내세운 이 가게 사장님의 센스가 이 곳을 찾는 모든 이들과의 좋은 거래로 이어질 수 있기를. 



마음을 준다는 어느 가게의 센스 있는 주차금지 사인. 정신없어 보이는 이 곳에도 브랜딩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문득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브랜딩의 기초 마음 사고 마음 주기. 철저히 물류, 수요, 노동력의 경제가 전부라 여기는 시장에서도 감성이 차별화를 만든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이 입간판 하나에 신기하게도 고되고 답답한 몸과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그래, 이 또한 모든 것의 과정이다. 지금 여긴, 모로 가는 길을 걷는 나와 그네들의 발자국도 남지 않을 방산시장의 어느 골목, 그뿐이다.



... end.


다시, 종로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시장 맞은편엔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방산시장이 있다. 이에 대한 위키백과 설명은 이렇다.


Bangsan Market is a traditional market located in the Jugyo-dong neighborhood of Jung-gu, Seoul, South Korea.


직역하자면, "방산시장은 서울 중구 주교동에 위치한 전통 시장"이다. 너무 간략하다.


방산시장을 처음 접한 것은 몇 년 전, 엄마의 베이킹 취미 때문이었다. 이 곳에서 베이킹에 쓰는 도구와 포장재를 구매하시는데 동행하기 전까진 흔히 알고 있는 방산, 즉 '방위산업'과 연관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했으니 30대 초반 남자다운 발상이다. 


위키백과에 소개된 방산시장의 정의는 조금 더 있다.


The name of the market comes from the location's former condition during the Joseon Dynasty. At that time the area was not well maintained, and therefore became infamous for its bad smell. People began calling this place Bangsan, bang being Korean for fragrant.


조선시대에 존재한 이 지역은 잘 관리되지 않아 악취로 유명했으며, 사람들은 따라서 방(芳), 즉 냄새가 나는 언덕이라는 의미로 방산이라 이름 붙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시 스토리(seoulstory.kr)'에 따르면 전혀 다른 맥락의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방산시장의 이름 ‘방산(芳山)’에는 꽃향기가 풍기는 산이라는 낭만적 의미가 담겨 있다. (중략)... 모래로 된 이 가산에 무궁화를 심어 꽃향기가 사방으로 퍼지자 ‘芳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같은 이름을 두고 위키에선 악취, 서울시에선 꽃향기라고 다소 상반된 기원을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저 한자는 부정적 의미의 '냄새'보단 긍정적인 '향기'라는 쓰임이 더 많은 듯하다. 아무튼, 현재 이 방산시장은 중소상공인들, 특히 카페, 꽃, 베이커리, 각종 선물, 음식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산업용 포장재가 벌크(bulk)로 거래되고 있으며, 이밖에도 각종 부자재와 인테리어 소품 등을 취급하는 550여 도매상이 밀집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의 부자재 마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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