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서비스 중단이 재난이 된 이유
과몰입 하지 않자, 일상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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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줘’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일은 고객이 그것을 원하기 전에 고객이 원할만한 것을 제시하는 것이다”
(“Some people say, "Give the customers what they want." Our job is to figure out what they're going to want before they do”)
⁃ Steve Jobs (1995-2011) -
맥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는 이와 같은 취지로, “우린 맥을 엄청 많이(zillions) 팔 테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그걸 만들었다. 맥이 대단한지 어떤지 판단한 것도 우리였고, 무슨 시장조사를 한 적도 없었다. … 우리도 업계 트렌드를 살펴보긴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당신이 뭔가를 보여주기 전까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라고 이야기했다.
그가 혁신의 귀재이자 마케팅의 천재라 불리는 이유고, 소비자는 혁신적이지 않고 어디까지나 대중적이라는 것을 간파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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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훗날 디지털 소통의 역사 속 한 챕터로 소개될만한 큰 사건이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잠시 끊김은 있더라도 언제나 공기처럼 존재할 것만 같았던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서비스가 중단된 것이다. 많은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본인은 은둔형 주말을 보내다 한참이 지나서야 지인으로부터 온 SMS로부터 알았다.
언론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뉴스가 소개한 많은 이들의 불편은 비단 메신저 본연의 기능에 그치지 않았다. 송금, 결제, 택시 호출, 버스도착정보 확인 등 일상 속 다양한 상황에서의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사과와 이를 직접 언급한 대통령 메시지를 접하고, 서른여섯 시간 동안 그 사태를 몰랐던 국민도 있었던 이 일의 책임이 정말 기업의 관리 소홀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언론 기사의 타이틀 하나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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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의존 이 정도였나’… 교통・금융・유통 등 생활 전반 지장’
대통령은 이 일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플랫폼은 국가 기간시설과 같다”라고 언급하며 장관급 회의 주재와 신속한 복구에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국민 불편 해소가 빨라지기 위한 조치라면 환영할 일이지만, 정말 카카오는 그들의 말마따나 ‘전쟁이나 기상이변과 같은 국가 재난상황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없으면 안 되는 기간시설에 준하는 서비스’가 된 걸까 하는 의문은 들었다. 한 언론인이 카카오 서비스를 ‘송유관, 수도시설, 전기통신시설 등과 같은 수준의 범국민 기간 통신망’이라고 말한 내용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상기 제목에 포함된 한 단어, ‘의존’이라는 본의(本意)에 그 근거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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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依存)이란 단어를 이루는 첫 글자 ‘의지할 의(依)’는 파자하면 사람(人)과 옷(衣)으로 이루어진다. 즉, 사람에게 옷과 같은 정도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유추해볼 수 있다. ‘옷’은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하지만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진 않다. 의식주(衣食住)는 생명과 직결된 빛, 땅, 공기, 물과 같은 좀 더 원초적이고 필수적인 존재와는 다른 종류의 개념인 것이다. 의존에는 수준(度, level)이 있어 ‘의존도’와 같이 쓸 수 있지만, 필수적 요소에는 정도가 없다. 그러므로 의존의 정도에 따라 불편의 수준이 달라짐은 당연하다. 애초에 그냥 적당한 수준에서 그 혜택만을 누리던 사람들은 분명 상대적으로 불편함을 덜 느꼈을 것이다.
자주 이용하던 서비스의 일시적 장애 수준으로 이번 사태를 인식했던 사람들의 일상은 이랬을 것이다. 무의미한 잡담 대신 중요한 연락만을 통화나 메시지를 통해 하고, 택시는 다른 서비스를 이용해 호출하거나 길에서 직접 잡고, 송금은 은행 자체 앱으로 하거나 급하지 않으면 잠시 미뤘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편의점에서 생수와 과자를 사며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고, 업무상 급한 소통은 이메일이나 자체 업무용 메신저를 이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란’의 수준이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 의존도가 너무 높은 나머지 마땅한 대체재가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그 수단에 지나치게 몰입해 그 행위의 목적은 망각하곤 한다. 본질을 잃게 되면, 대체재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피해의 원인은 데이터센터 화재에 있겠지만, 그게 재난이었던 이유는 대중의 특정 서비스 과의존이나 과몰입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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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겪으며 언제든 디지털은 장애가 생길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도 자각했다. 도구가 고장 나 외양간을 못 고친다면 그 도구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그 도구에만 의존해 아무런 대책이 없는 사용자를 탓해야 할까? 정답은 없지만, 재난에 스스로를 지켜줄 것은 위험으로부터의 물리적 거리(혹은 벽)이지 디지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단절의 시대에 세상의 소식을 듣기 위해, 아날로그 라디오 하나쯤 지하실에 갖추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은 원티드 인살롱 x 기고만장 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