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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pr 12. 2019

꿈이 있는 회사원의 저녁이 있는 삶

어느 회사원의 공유 오피스 임대기

서른다섯 직장인.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난 또 다른 사무공간, 공유 오피스를 임대할까 한다. 요즘 1인 창업자들에게 인기 있는 형태의 업무 공간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뭘 한다고? 제정신이냐고 반응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회사에는 노트북 대신 큰 화면의 아이맥을 요구하고, 생산성을 위해 서피스 프로 랩톱을 내 돈 주고 산 것보다 더 어이없는 생각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전에도 그런 공간의 필요는 절실했다. 작년부터 올해 까지, 평일이고 주말이고 내가 포털에 빈번히 검색했던 키워드는 #24시간카페, #강남역인근스터디카페, #주차가능강남역카페 등이었다. 공통의 주제는 카페라는 공간. 바로 평일 밤샘 혹은 주말 작업을 위한 공간(!)이었다. 밤샘 혹은 주말 작업이 필요한 만큼 회사 일이 많아서?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관계도 정치도 서툴러 남의 회사에서 출세하는 것을 애초에 포기한 나로서는 직무에 충실한 약속된 업무시간 이외엔 나를 위한 다른 일들에 미쳐보고 싶으니까.



무슨 고시 공부라도 하나?


대체 무슨 일이기에 평일 저녁에도, 주말에도, 시도 때도 없이 그것도 사무실이 아닌 카페에서 굳이 하려 하는가? 그 시작은 회사 일이었지만 현재 시점에선 나의 일이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 일을 아직도, 그것도 평일 주말 안 가리고 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 일은 그 회사도, 상사도, 동료들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그 일로 인해 무료했던 나의 삶에 목표와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의 도구는 펜과 카메라, 꿈은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오너다.


전 회사에서 원래 주어진 일에 정성과 의미를 더하고자 시작했던 부수적인 노력들이 이젠 나의 취미가 되었다. 첨단 IT 회사라서 넘쳐나는 기술 정보보다 사람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곁들일 사진을 더 분위기 있게 찍었다. 다음엔 생동감 있는 감동을 전하기 위해 영상을 배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내 문화 담당자와 열정 있는 동료들과 그리고 그런 일들이 좋아서 모인 크리에이터들과 모임을 만들어 협업하며 과정과 결과물에 보람을 느꼈다. 그것은 본래 주어진 나의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의 본질에 가까웠다. 더 들인 수고는 팀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더 넓은 '동료들로부터의 공감’이라는 넘치는 보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수확기 볏단처럼 작업 소재가 쌓였고, 그것을 모두 만들어내기에 회사에서의 한정된 시간과 공간은 부족했다. (심지어 그 회사가 직원이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 어워드(GWP)'에서 3년 연속 수상할 만큼 멋진 근무환경을 자랑했다고 하더라도!) 경험이 있는 직장인은 느끼겠지만, 회사는 아무리 공간이 좋아도 근무 시간 이후에는 급속도로 지쳐간다. 게다가 그곳은 직원의 개인적인 일이 아닌 공적인 일을 하라고 허락된 사무事務 공간이다. 집은 의욕이 저하되어 나를 소파에 눕게 만든다. 어설프게 꾸며진 작업실은 먼지가 쌓여갔다. 그러니 쉬는 날, 도저히 더 미룰 수 없어 몸을 일으켜 찾아가는 곳은 동네 커피숍이었다. 정신없이 작업을 해도 말라가는 커피잔만큼 내 목도 말라가고, 커피를 구입한 돈 딱 그 값어치만큼의 안락함에 가득한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 또한 울었다. (안락한 의자가 구비된 커피숍은 거의 없다. 테이블 회전 때문에, 대부분의 커피숍은 딱딱한 나무 의자를 제공한다.) 그래도 집보다 낫다는 이유로 커피숍을 전전했다.


또한, 플래시 메모리보다 더 빠른 휘발 속도를 자랑하는 내 두뇌의 지속 저장 기능은 닥치는 대로 메모라는 습관을 만들었다. 그렇게 떠오른 소재가 날아가기 전에, 내가 글을 쓰는 공간은 전철역, 버스정류장, 버스, 지하절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완성을 위해선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은 늘 필요했다. 그것이 업무상 지급된 PC 외에 별도로 이동성 좋고 가벼운 서피스 프로 랩톱을 구입한 이유고, 환경에 민감한 내가 본격적인 글쓰기 장소로 카페를 선호했던 이유이다. 그리고 매일 필요했다. 하룻밤 집중해 작업을 끝낼 편한 나만의 사무私務 공간이.


카페 공간에는 음악, 사람들, 커피가 있고 오랜 시간 편안히 머물 의자가 없다 / photography by 심광수


그렇다고 멀쩡한 회사 집 놔두고 오피스 임대를?
 

각기 다른 나의 세 가지 지향하는 모습이 이걸 필요로 한다. 하나는 크리에이터, 하나는 마케터, 다른 하나는 비즈니스 리더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현재의 모습이 더 강력히 이 것을 원하게 했다. 바로 미완성이라는 모습.

나는 아직 미완성이다. 담백한 표현으로, '아직 어느 목표 하나 취미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전 회사에선 사내 매거진 기획과 작성, 배포 일을 했지만 그것 이외에 공식적으로 크리에이터스 모임을 만들어 관심 있는 분들과 콘텐츠 제작을 함께 했다. 그들과 함께 늘 아이디어가 넘쳐 여기저기 적어두고 그중 일부는 실제 글이나 영상 콘텐츠로 제작했다. 그렇게 콘텐츠는 쌓여 갔지만 정작 개인 블로그에는 곰팡이가 생겼고 목표 중 하나인 브런치 작가도 되지 못했다(이 글을 적은 시점은 작년 이므로). 넘치는 열정은 늘 부족한 시간에 소멸되고, 개인과 소셜 채널에 업로드하는 등의 후속 조치는 귀갓길에, 술자리에서, 집에서의 나태함에 잊혀갔다. 꼭꼭 하고자 했던 책 집필은 매일 조금씩 하고 있지만 불안하다. 하루 이틀 시간만 가다가 어디에선가 잠자는 나의 '무작정 중국 10일 여행기'처럼 되는 것이. 나만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로 추진의 동력을 잃었다. 이것은 요즈음 내가 모두와의 추억을 아로새기는 엔딩 영상 한 편 완성하지 못해 미완성으로 두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다. 얼마나 괴롭냐면, 어느 여름밤 귀 주위에 계속해서 들려오는 웽웽거리는 모기소리를 따라 내 뺨을 내가 치면서 잠들지도 깨어나지 못해 괴로운 정도, 혹은 그 이상으로. 그것의 현실화는 지금과 같은 일상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직장인들의 흔한 고정관념은 바로 '공유 오피스는 스타트업 창업을 위해 이용하는 곳이야'라는 것이다. 그 고정관념이 '주간도 아닌, 본업이 있는 직장인이 야간 몇 시간만 이용하려고 그런 공간을 임대하다니'와 같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들은 그런 일이라면 회사나 집에서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한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 오후 늦게까지 일 하다가 마음만 퇴근하고 같은 곳에서 계속 나만의 일을 한다? 나는 10년 직장생활을 하고 35년을 나로 살아오면서, 회사에서는 6시 이후에 급속도로 활기를 잃어가고 집에 서재가 있어도 그곳에 가기 전에 늘 소파가 나를 먼저 집어삼킨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일종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집에서 어느 날 그 열정을 보이면, 가족의 지나친 관심에 내가 세상 제일 열심히 살지만 허덕이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무능아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집에선 잠만 자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다. (가끔 드라마도 보고)


그래도 비용을 생각하면 그건 너무 사치 아닌가?

대표적인 공유 오피스 위워크(WeWork) 기준 월 최소 35만 원. 직장인 월급에 매 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 보험, 용돈 등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월 35만 원이 아깝지 않은 이유가 있다.


머나먼 남쪽 신도시에 사는 나는 피크시간에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하루 꼬박 세 시간은 길에서 허비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더 이른 아침 혹은 늦은 밤이라면 이동 시간은 좀 더 줄어든다. 줄어든 이동시간이 15분 정도라면 왕복 30분. 밥 먹고 낮잠을 자며 피로를 해소하거나 그간 못한 자질구레한 잡무들을 처리하거나 전화 영어를 하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기관지와 면역이 약해 환절기마다 기침감기에 시달리는 나는 에너지 보충이 중요한데, 아침은 거의 먹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점심과 저녁을 많이 먹어 소화기에 탈이 잦다. 불규칙한 식사나 공복의 지속, 스트레스로 인한 속 쓰림이 원인이라고 한다. 공유 오피스에선 거창한 식사는 아니라도 출출할 때 요기할 수 있는 시리얼과 오트밀 등이 제공된다. 아침과 저녁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바빠 거르는 끼니를 간식으로 챙길 수도 있다.


임대료 월 고정비용은 그 공간을 사용할 저녁시간에 자연스레 절약될 다음 항목들로 충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달 무의미하게 잡히는 최소 일주일 두세 번의 술 약속을 줄인다면 매 달 거의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 20만 원과 늦은 귀가에 집까지 택시를 타는 비용 10만 원, 모두 최대 3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바쁜 일상에 허구한 날 외식 혹은 배달 음식을 먹으며 낭비하는 지출 15만 원과 집중할 공간이 필요해 때때로 커피숍을 이용하며 지출하는 음료값 최소 5만 원을 줄일 수 있다. 공유 오피스의 월 고정석 임대료를 상회하는 이 고정 지출 비용을 임대료로 지불하고, 그렇게 확보된 시간에 나의 생산적 취미활동이나 개인 비즈니스를 준비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투자 성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공유오피스에는 업무 공간 외에도 카페와 같은 오픈 미팅 공간이 잘 꾸며져 있다 / photography by 심광수


업무시간 외에 이용할 시간이 있나?


나의 평일 일상을 살펴보니 저녁에만 사용할 이 공간을 임대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전혀 아깝지 않은 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중엔 보통 퇴근 후 집으로 향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술자리가 있고, 한 번 이상은 외식을 하고, 최소 한 번은 배달 음식을 먹으므로 어쩔 땐 일주일에 한 번도 집에서 밥을 먹지 않기도 한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면 퇴근 후부터 잠이 들 때까지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다. 그렇게 열두 시 전후에 잠이 들고, 아침 여섯 시 반에 눈을 뜬다.


공유 오피스를 임대한 후 나의 일상 계획은 이렇다. 주중 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공유 오피스로 퇴근한다. 평일 중 4일, 주말 중 하루 1주일에 최소 5일을 목표로 한다. 7시 퇴근 후 오피스 도착 시간은 7시 30분, 잠시 쉬었다가 시작하는 개인 업무는 8시, 세 시간 동안 집중한다. 주말엔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8시간을 집중한다. 일주일 총 20시간이 생기는 셈이다.


나는 한 번에 많은 일을 폭발적으로 하는 안 좋은 업무 습관을 가졌다. 그리고 방전 속도가 빠르다. 가만히 있어도 온갖 생각이 든다. 꿈도 잦다. 그래서 잠이 얕고 완전한 쉼이 없다. 피로가 몰려 자주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늘 피곤하고 그저 쉬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늘 부신피로증후군*에 시달린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면역이 약해지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집에 가면 그저 눕고 싶고, 그 유혹에 못 이겨할 일을 미루고, 바보상자에 시간을 쏟다가 티브이를 켜 둔 채로 잠드는 일이 다반사다. 상상과 의욕은 넘치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릴리즈 시기가 무기한 연장된 프로젝트가 대체 몇 건인지? 이 일들을 매력적인 공간에서 매일 조금씩 하며 넘치는 아이디어를 관리할 수 있다면?


*부신피로증후군: 신장 위에 위치한 두 개의 삼각형 모양의 내 분비 기관 '부신'이 관장하는 체온 혈압 혈당 등 인체 균형에 이상이 생겨 자주 피로감을 느끼는 증상으로 평소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이 겪는 만성 피로의 일종.



나는 아직도 저작에 목이 마르다. 나만의 비즈니스도 현실화하고 싶고 커뮤니티 네트워크도 잘 만들어 많은 사람과 더 많은 경험을 함께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예전 회사를 다니는 동안 주중 주말 잔업을 하면서도 그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고 현재 이직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관심을 쏟는 이유다. 그리고 앞선 여러 욕구들이 내가 술을, 외식을, 배달 음식을 줄이고 공유 오피스를 임대해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려는 이유다. 게다가 그냥 공간이 아니다. 힙한 공간 인테리어에 편의 시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선택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공유오피스 #업무공간 #저녁이있는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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