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 또는 사람이 해야할 일(人事)
하루의 시작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입니다"
- 인사
문화 트렌드가 빠르게 변할 때 그 흐름을 좇는 것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조금 더 기본에 가까운, 변하지 않는 가치에 관심과 시선이 머무는 것이 좋겠다. 이를테면, 구성원의 배려나 매너와 같은.
전체의 좋은 문화를 해치는 일부 몰지각은 더는 부서에, 개개인의 소양에, 그저 지나는 말로 하는 질책과 험담에 잔류시킬 문제가 아니다. 의외의 기회에 회사의 이미지에 긍정 혹은 부정의 영향을 미치는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CSR) 활동은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이르렀을 때, 사회에 그 가치를 환원한다는 취지에서 사회 공헌과 브랜드 홍보의 의의를 갖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사정상 일부 회사에서만 적극적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회사 구성원 일상의 책임’ 은 당장 실행 가능하고, 회사에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통해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만만치 않게 크다고 볼 수 있다.
‘맞이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이미 선한 분위기다. 두 팔 벌려 환대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어 표현은 ‘hospitality’다. 라틴어 ‘hospitale’이 어원이며, 심신을 회복한다는 본의에서 hostel, hotel, inn, hospital 등의 파생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즉, 맞이하는 이(host)가 손님(guest)을 맞는 일은 심신이 회복될 정도로 편안한 배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맞이한다’는 단어의 속성은 양방향성이라고 한다. 좋은 분위기의 만남은, host와 guest의 상호 환대의 과정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들어서면, 분위기나 맛보단 대체로 점원의 배려 깊은 태도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기분 좋은 여운이었던 것 같다. 배려는 친절함과 같기도 또 다르기도 하다. 나는 익숙하고 상대는 어색한 무언가를 나의 노력으로 채우고, 상대도 익숙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배려의 실체가 아닐까? 예를 들어, 모르던 프로모션 혜택을 챙겨서 결제를 도와준다거나, 짐이 많은 방문객을 위해 출입문을 잠시 붙잡아 먼저 지나가게 해 주는, 그런 일.
지나는 손님(客)을 부르는(呼)것을 호객이라 한다. 호객은 인지도가 약한 식당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손님을 유치하는 행위이다. 회사 가까운 곳 식당에 유독 눈에 띄는 호객 아주머니가 있다. 녹음기를 틀어놓았나 싶게 능란하게 반복되는 멘트가 인상 깊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진심으로 맛있어 지인에게 권하듯 하는 메쏘드(method)급 호소력 짙은 멘트이다. 화룡점정은 바로 이 인사말이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그 아주머니는 그곳에서 식사를 하건 안하건 건물을 나오거나 길을 지나는 누구나 눈을 마주치면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다. 많은 동료가 이야기했다. 아주머니께서 하는 인사 때문에라도 한번 들러봐야겠다고.
반대로 어느 편의점에서는 찾는 제품이 없어 점원에게 묻자 ‘거기 없으면 없는 것’이라며 쳐다보지도 않고 응대했다. 2+1 프로모션 제품을 한 번에 구매하기 부담되어 그 편의점 브랜드가 홍보하는 냉장고 보관 서비스에 대해 묻자 ‘일한 지 오래 안되어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온다. 문을 열고 나오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사례에서 강남역 점심 뷔페식당 호객 아주머니는 관심 없던 손님의 발걸음을 돌렸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찾아온 손님이 발걸음을 돌려 나가게 했다. 둘 다 맡은 책임은 비슷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였다. 오너십이나 팔로워십 같은 잘 정리되고 포장된 어떤 개념이 아니라, 그들이 책임과 책무를 대하는 기본적인 관념의 차이로부터 생긴 결과인 것이다. 말 몇 마디의 차이 정도가 아니라, 객이 머물지 떠날지를 결정하게 한 차이였다.
마케팅 채널로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과 초대자의 배려로 서비스에 대해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던 어느 글로벌 SNS 회사의 호스팅이 떠오른다.
글로벌 SNS 플랫폼 페이스북(Facebook)의 서울 본사 이벤트에 몇 차례 참여하며 매 번 인상 깊었던 것은, 화려한 장식이나 보기에만 좋은 케이터링(catering) 없이 참 실용적이고 편안하게 참석자의 낯섦을 보살핀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원래 있었을 편안한 색감의 간접 조명과 거슬리지 않게 적당한 볼륨으로 틀어놓은 캐주얼하고 편안한 음악은 'F'라는 브랜드의 내재된 가치를 이렇게 잘 보여주는구나 싶은 좋은 호스팅의 경험이었다. 방문이 편안했던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다. 방문자를 입구부터 맞이하며 시종일관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 직원들의 매너는, 그냥 그래야 해서 그런 친절이 아니라, 여유가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배려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름 마따나 그 회사의 '얼굴’은 그런 표정이었다.
다른 날 방문했던 한 공유 오피스에 위치한 회사의 직원이, 이리 저리 살피며 입구에서 로비로 들어설 때 앞을 막아서며, '방문객은 출입할 수 없으니 담당자를 기다리라'며 용무도 묻지 않고 들어가버렸던 것과 너무도 상반된 경험이었다. 나중에 들어가보니 안에는 게스트 대기 장소가 따로 구비되어 있었다.
다른 업체를 방문하며 겪은 일이다. 미팅을 위해 찾아간 그 회사의 건물은 깔끔했지만 연식은 좀 오래된 구조로 보였고, 엘리베이터마다 서는 층이 달라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서성이던 그때, 찾는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출입증을 목에 건 어느 직원이 먼저 다가와 묻는다.
"혹시 어디 찾아오셨어요?"
어디라고 답하자 그는 자신도 그 회사 직원이라며, 타야 할 엘리베이터와 리셉션 호출 방법 등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먼저 내리는 그는 '수고하십시오'라며 공손한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의 가볍지 않은 친절함으로부터 어떤 여유도 보였달까? 그 회사가, 또 회사의 문화가 무척 좋게 느껴졌다. 로고가 새겨진 출입증이 모처럼 제 역할을 한 셈이다. 고교시절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여러분이 가슴에 달고 있는 배지와 교표에 누가 되지 않도록 어디서든 행동거지에 조심을 …”
그땐,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마케팅에서 고객이 브랜드를 인지하고 방문하도록 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일련의 여정을 퍼널(funnel), 즉 '깔때기'라고 표현한다. 브랜드 노출 대비 실제 방문자가 적고, 그 방문자가 다시 우리의 서비스나 제품을 구매하는 수는 더 적어지기 때문이다. 핵심은 퍼널의 면을 고르게 해 비용 대비 최대한의 성과(performance)를 내도록 최적화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퍼포먼스 마케팅의 효과 이전에 기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더 많은 비용을 들인다. 노력해서 쌓은 브랜드 이미지의 제고를 위해, 기업은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해 평판 관리도 한다. 그렇다면 브랜드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전반적인 퍼널을 잘 설계하고 갖추면 회사의 마케팅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영업 현장과 고객이 아닌, 의외의 접점에서 유쾌하지 않은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지는 않을까?
회사 입장에선 면접자도 손님이다. 능숙한 채용 담당자는 면접의 전 과정에서 면접자를 배려하며 회사의 좋은 이미지 형성에 일조한다. 하지만 의외의 누수는 실무 면접자로부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면접에 초대된 입장에서도, 면접 자체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부스스한 얼굴로 면접에 참여한 면접관을 겪으며 다소 고압적이긴 해도 보수적 대기업의 면접 모습이 차라리 낫다고 여겨진 경험이 있었다. 실무자로서 해당 직무의 동료를 채용하는 면접 자리에 동석해 시니어의 무례한 질문과 태도를 목격한 적도 있다. 배려는 각자 자신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모습을 조금 바꿀 뿐이지, 없어지거나 없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망각한 듯한 행동이었고 결과는 회사의 이름에 한 먹칠이었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고자 HR이나 조직문화에서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것이다. 채용 브랜딩을 위해 채용담당자들을 교육하고, 면접 실무자들을 위한 면접 가이드를 만드는 등의 일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례는 타사와의 영업이나 협업 현장에도 많이 발생한다.
“아이고, 요즘 통 바빠 정신이 없네요”
결국 15분가량이 지나서야 회의에 들어온 부서장은 사과의 언급 없이 회의를 시작한다. 그날 미팅에는 회사의 이벤트를 위해 선정한 대행사의 담당자들이 배석했다. 실례에 대한 사과 대신 최근 확장하는 사업 탓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의 일과를 자랑처럼 늘어놓더니, 견적 이야기가 나오자 요즘 예산이 삭감되어 저렴하게 부탁한다며 상반된 넋두리를 한다. 말을 잘 듣지 않고 중간에 자르기도 여러 번. 그런 상위 직급자의 태도로부터, 방문업체 직원이 아닌 실무 담당자인 본인 낯빛이 더 상기되며 무척 불편한 감정이 들었었다. 다른 영업 현장에서의 경험이다.
“결혼은 했어요? 애는?”
동생 같아 보여 물었으니 기분 나빠하지 말라며, 상대 업체 매니저에게 이렇게 묻던 회사의 책임자가 있었다. 오랫동안 복사기 영업을 했다는 그는, 영업은 원래 ‘친밀함’이 중요하다며 공사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묘한 말들을 건네는 습관이 있었다.
“네? 아.. 결혼은 아직”
느닷없이 그런 걸 왜 묻느냐는 당혹의 표정을 감추지 못한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한 술 더 뜬다.
“아니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왜 아직까지. 내가 소개해줄까?”
은근슬쩍 말도 편하게 한다. 불편함을 애써 감추고 웃어넘기는 해당 업체 담당자. 맞이하는 입장이나 방문하는 입장이나,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접점은 참 다양하다고, 그리고 통제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 기획 미팅에서 철저히 갑과 을의 입장을 나누고 무례하게 굴어 좋은 협업을 방해한 부서장의 경우와, 타사 방문 미팅에서 담당자에게 친밀함을 가장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불쾌감을 준 책임자의 사례도 그저 개인의 허물로 그칠 일은 아닐 것이다. 당장은 미미하나마 회사의 문화 브랜딩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사례가 반복되면 그것은 ‘평판’이 될 것이므로 부서의 책임으로만 남기기에도 부족함이 많다.
안에서 깨진 종은 밖에서도 불쾌한 소음만 낼뿐이다. 그러니 그 원인을 고쳐 개선하기 위해, 전체 직원들의 의식과 관념을 이끌 중앙의 계도가 필요하다. 중앙의 노력에는 주기적인 캠페인과 교육, 워크숍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가까운 곳에서부터의 실천이다. 여러 목적으로 방문하는 게스트 외에도 택배 아저씨, 청소 아주머니, 심지어 잘 못 찾아온 타 층의 방문객까지 좀 더 여유 있는 표정과 태도로 대하는 등의 행동이 나와 내 주위 동료들에게 좋은 변화의 출발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그들의 신분 여부에 관계없는 잠재적 인플루언서라면, 그런 문화에 신경 쓰고 솔선하는 회사의 오너 또는 문화 담당자는 데이터로 측정 불가능할, 정말 큰 마케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손님은 손(孫)에 ‘-님’ 자를 붙여 높이는 형태로 많이 쓴다. ‘찾아와 맞이하는 이’란 의미의 한자는 ‘객(客)’, 영어는 ‘게스트(guest)’라 표현한다. 우리말에서 유독 ‘님’을 붙여 표현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문화가 우리를 찾아오는 이를 존중의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을 더 중요하고 기분 좋게 여겨서가 아닐까?
다, ‘님’이라 불렀던 이유가 있다.
※해당 포스팅은 기업문화를 고민하는 만인의 장 '기고만장 x 원티드 인살롱'에도 동일하게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