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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y 03. 2019

서랍 속 가득한 100번의 만남

차 한잔으로 만드는 부드러운 대화의 매력

때로는 수단이 목적을 만들기도 한다. 없던 매거진이란 틀을 짜니 그 안에 채울 내용들이 아쉬워 콘텐츠 제작을 시작했던 것처럼. '차 한잔'이 수단, 대화는 목적이지만 격식 없는 대화를 지속하기 위해 하루 이틀 사흘, 직장인이 하루 감당할 수 있는 예산에서 점심 식사와 커피 세 잔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치였다.




마케팅을 통칭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내부든 외부든 소통이 발전과 확장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케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에 기대했던 격의 없을 것이라 믿었던 새로운 환경에서조차 기본이 되는 소통이 대체로 막혀 있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5년 차 스타트업이다. 모두가 앞을 향해 달리며 옆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어 보이는 이 곳에선 정작 대화가 많이 필요한 일 조차도 일방적 소통의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내부에선 오버 커뮤니케이션(over communication), 즉 충분한 소통을 추구한다 이야기 하지만 창업자 한 사람만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직원들의 이야기 속에선, 이 조직은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나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는 멋진 경험을 한 동지들과 창업자 사이에 일종의 유니온(union)이 형성되어 있어, 웬만해선 외부 설득이 통하지 않는 이중 구조의 속앓이 중이라는 염려 섞인 의견이 오간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조직이 성장하여 상대적으로 외부의 경험이 많은 업계 경력자들을 유입하지만 그들이 갖게 되는 긍정적 객관성은 종종 기존 인원과 추가 인원 사이의 간극을 만들 운영 대소사에 기존 리더군과 경력직원 반발의 흔한 현상을 만드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지 모른다.


경력 직원 입장에서 이러한 상황을 차라리 받아들이고 나면 마음은 조금 편하겠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정말 그러한가? 끊임없는 의문 속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회사에도 유익한 결과라는 믿음이다. 나를 잃고 타성만을 따른다면 롱-런(long-run)은 힘들 것이다. 추진력의 바닥이 곧 추락의 원인. 추진력은 변화에서 생겨난다고 믿지만 그런 원칙은 여전히 좌절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 가진 생각대로, 많은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여러 상황을 이해하려는 첫걸음인 차 한잔과 함께하는 대화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직 후 이방인으로서 먼저 다가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도 편한 상대가 아니라 지나친 겸양으로 마음이 오히려 닫히는 대화. 따뜻한 커피 한잔에서 시작하는 환담은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한 수단으로 더할 나위 없지만 그 목적은 순수하더라도 몇 번의 대화에 직장인 점심 값의 두세 배에 달하는 커피 값을 쓰다 보니 이러다 파산하겠다 싶어 차와 종이컵을 대량으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인터넷 가격 기준 100잔 분량의 차와 종이컵이 일반 커피숍의 카페라테 6잔 정도의 가격이었다.


차를 수단으로 편하게 만나자 해 본다. 따뜻한 차 한잔으로 시작하는 대화는 조금 더 부드럽고 넓어져 서로를 알아가는 재미가 더해진다. 그렇게 알게 된 서로와 나누는 이야기는 물론 블라인드 뒤의 대화보단 조금 격식을 차릴진 몰라도 적어도 '기회' 한 번은 가져다준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스스럼없이 흩어진다. 그렇게 티백(teabag)과 컵을 책상 서랍 가득 채워놓고, 오늘도 함께 마실 사람을 찾아 대화에 나서 볼까 한다. 서랍이 무거우니 든든하다. 따뜻한 찻물에서 피어나는 수증기가 건조한 서로의 냉기를 데워 함께의 시간이 포근히 피어나길 기대해 본다.


차(tea)를 사고, 차를 사니 더 많이 만나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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