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공간에서 잘 헤어지는 방법
어쩌면 우리는 회사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닌 세상이라는 무대에 함께 올라온 어리둥절한 초보 배우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서로 잘 가라는 인사 한 마디 제대로 못 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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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빠르게 적응하려는 본능이 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발생하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나 분위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들고나는 사람으로부터가 가장 큰 듯하다. 누군가 새로운 회사로 첫 출근을 하게 되면 원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고 여기며 조심할 것이다. 입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자주 콩닥거리고 머리 회로는 평소보다 열 배는 더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스트레스는 조직보다 개인이 훨씬 더 클것이다. 열 명의 조직에 한 명이 새로 들어가게 되면, 열 명이 그 새로운 한 사람에 적응하는 노력보다 한 명이 열 명에 적응하는 노력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고 적응 기간을 짧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새로운 이를 맞이하는 문화인 온보딩(on-boarding)에 신경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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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운영하는 중고의류 거래 플랫폼의 이름은 ‘반복’이다. 구호는 ‘만나고 헤어지고, 반복’. 처음 이 캐치프라이즈(catchphrase)를 접했을 때 피식 웃으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 자꾸 곱씹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물건도, 카페의 종업원도, 우연히 만난 행인도, 깊은 정을 나눈 연인도 모두 만나고, 또 헤어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의 만남은 반갑고, 대부분의 헤어짐은 아쉽다. 물론 좋은 만남과 좋은 헤어짐에 한해서.
반가운 만남은 좋은 에너지를, 좋은 헤어짐은 좋은 인연을 만든다. 반대로 나쁜 헤어짐은 마음의 짐이 되거나 소모적인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반가운 만남만큼이나 좋은 헤어짐을 위해서 함께 겪는 시간과 헤어지는 과정에 조금의 정성은 들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온보딩 못지않게 오프 보딩(off-boarding), 즉 헤어지는 방법도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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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흐르던 별똥별도,
같은 자리에 빛나던 샛별도
더는 별다른 감정 없이 바라볼 수 있음에
아주 특별한 공허함을 느끼다
기업이 요동치는 시류를 만날수록 승선원들은 더 단단히 배의 난간을 붙잡고 힘을 모아 항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전적인 팀플레이에 대한 가르침이다. 요즘 회사에서 일하는 개인은 더는 배의 승선원이 아닌 ‘나’라는 독립적인 배로 함께 항해 하려는 듯하다. 개인화된 배들은 함대에 속하기도, 또는 벗어나기도 하며 ‘대략’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그 사이에 의리나 정(情) 같은 감성의 지지대보다 좀 더 실질적인 연결고리가 서로를 이끈다. 그러다 보니 이별이 잦아지고, 갈수록 더 익숙하고 무감각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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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단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생각해 봐야 부질없는 짓이야.
그래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를.
-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 中
익숙해지는 것들 중, 이별과 단념이 가장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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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어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이제는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꿈이 뭐냐는 질문엔 여전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중략) 어쩌다 함께 먹게 된 점심식사 자리에서 어색함 없이 서로의 꿈 이야기를 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의 대략의 꿈을 알게 되었고 나의 꿈도 전했다. 그 꿈은 아주 정확한 어떠한 목표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가치관을 품고 최소한 지금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그가 멋져 보였고, 내 것을 나누며 다시금 나의 꿈이 사소한 변덕으로 끝나지 않으리라 희망도 얻게 됐다.
그날도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서 잠시의 작은 환풍기 소음, 스며드는 아침 빛, 쓴 커피 한 잔과 함께 생각에 잠기다가 여느 날과 같지 않음을 문득 뒤를 돌아본 그의 빈자리에서 느꼈다. 메신저를 열어본다. 같은 이름도 오늘은 더 흐릿하게 보인다. 대화 내용을 살펴보니 이 사람과 내가 자질구레한 대화가 참 없었구나 싶다. 두어 번의 밥 먹으러 가잔 이야기, 이전에 남은 업무상 대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동료와 나눈 한 두 번의 꿈 이야기는 참, 깊었다.
- <꿈을 이야기하던 동료의 빈자리> 中
그가 퇴사하며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이후에도 가끔 안부를 물을 때면 여전히 그날 그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회사 생활을 하며 생긴 동료에 대한 좋은 기억은 이렇게, 잘 보내며 맞이하는 이어짐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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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평가 플랫폼에 올라온 악성 리뷰가 그 회사 지원자를 감소시키는데,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까요?”
한 인사담당자가 모인 강연에서 연사가 예를 들며 질문을 했다. 지인에게 부탁해 쓰는 좋은 리뷰들로 희석시키는 방법, 플랫폼의 서비스를 이용해 해당 리뷰를 가리는 방법, 댓글로 소통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제안됐다. 누군가는 가장 본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악성 리뷰를 살피며 회사가 고칠 점은 고치고, 개선할 점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대안이라기보단 근본을 해결하는 정설(定說)에 가까운 의견이었다. 모두 좋은 의견이라며 연사는 이런 사례를 덧붙여 이야기한다.
“어느 회사는 퇴사한 제게 매 달 같은 날 10만 원씩 지급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함께일 때 좋은 인재였고, 떠나셨어도 여전히 좋은 인연입니다. 10만 원은 함께해주셨던 시간에 대한 저희의 감사의 표시입니다…’ 라고요. 그렇게 6개월간 매 달 10만 원을 선물 받았고, 회사에 대해 좋은 생각만 남게 되었습니다 (웃음)”
이 이야기로부터 첫 단추 못지않게 마지막 단추를 잘 채우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일은 내내 좋은 품을 유지하는데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이 사례는 어느 기업의 모범적인 헤어짐의 방법을 보여주지만, 직접 경험한 연사뿐 아니라 사례를 듣는 당사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은 그 기업이 보여준 진정성 있는 헤어짐과 그것을 대하는 철학이 남다르다고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그냥, 이런 미담이 특별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헤어짐 일색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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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으면 닿지 않고
말하면 쉬 잊히고
쓰고 전하니 진해져 간,
그리움.
쓰고 전하자. 만나고 배웅하자. 마음은 쓰려도 더 성숙한다. 스스로도, 관계도, 그들과의 미래도. 보상 체계나 오프 보딩 방법론 이전에, 동료로써, 사수로써, 또는 상급자로써 먼저 직원을 그런 미래로 초대하고, 이끌어 주자. 성숙함은 그 곳에 머물지 않고, 오랜 따스함으로 떠나는 이로부터 세상을 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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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좋았던 이별도, 아쉬웠던 이별도, 이미 흐릿해진 이별도 있었다. 좋았던 이별 뒤에는 여전히 그곳의 많은 이들과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회사에선, 나름대로 겪으며 정리한 그 회사의 비공식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인사 대신 돌렸었다. 다른 회사에선, 그간 여러 가지로 신세 지고 미안했던 동료들에게 바나나우유를 선물하고 떠나오기도 했다.
떠나는 이로써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을까, 남는 동료들과의 장면 장면이 여전히 기억에 선하다. 잠시 자리를 비워 얼굴을 보지 못한 동료가 노트북에 붙여둔 쪽지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고, 이메일로 전해받은 이런 인사는 여전히 마음 깊숙이 자리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떠오르기도 한다.
'러시아말로 헤어질 때 하는 말이 'До свиданья (다 스비다니아)'인데 이게 뜻이 ‘안녕’이 아니라 ‘다시 만날 때까지’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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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는 떠나는 입장과 보내는 입장이 있다. 전자 보다 후자가 더 잦다. 그러니 떠나는 입장에서의 경험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떠나는 경험의 잔상이 더 진하니, 떠나는 이가 혼자 출입문을 나서지 않기를, 혼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닫히는 문을 혼자 바라보지 않기를, 그의 이곳에서의 마지막 시선은 바닥이 아닌 함께였던 모두의 눈에 한 번은 더 머물렀기를, 그렇게 응원 가득 담아 좀 더 힘차게 앞날로 걸어가기를... 그런 마음으로 되도록 함께 문을 나서기를.
그리고 그 마음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동료들에게도 전해져 그들에게 더는 회사가 이별에 익숙해 무감각해지는 그런 공간이 아니길 바란다.
※이 글은 작가의 기업문화를 고민하는 만인의 장 - 기고만장 x 인살롱에도 동일하게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