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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Sep 29. 2022

공감의 언어

직원 참여형 문화 활동, 그리고 감상과 비평 이야기

‘세상에 좋은 작품의 수는 그것에 공감하는 독자의 수만큼이 아닐까?’


독자가 모든 글에 공감할 필요는 없다. 각자 취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또 작가가 했을 수많은 고민과 고침의 과정을 알 필요도 없다. 그러니 얼마든지 쉽게 비평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은 비평의 방식은 분명히 있다, 고 생각한다.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세상에 아직 내보이지 않았던 작품의 수정안을 전하고, 첫마디로 가차 없는 비판을 들었을 때 그 생각이 들었다.


Instagram @ke_nistry




#감상


감상(鑑賞) 은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모든 과정을 가리킨다. 감상을 이루는 한자 감(鑑)은 고대엔 세숫물을 담는 대야를 뜻했고, 이로부터 ‘비추는 거울’의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상(賞)은 흔히 ‘상주다’, ‘칭찬’의 의미로 쓰이지만 작품 감상에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이어지므로 반드시 그런 의미의 조합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감상은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감상엔 비평도 포함되어 있다. 처음엔 전체를 살피고, 다음엔 의미를 생각해보는 감상이 우리 일상에 좀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조적으로, 비평이 처음 등장하는 감상은 자갈 오르막길처럼 언덕 너머 펼쳐지는 바다의 감동에 닿기 전에 오르길 포기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이지 않을까?



#좋은 글


책을 읽고 대화를 하는 북 토크를 진행하기도 하고, 또 스스로 쓴 글에 대한 평을 듣기도 하는 등 여러 계기로 글 작품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의견을 듣는다. 예전엔 의견이 조금 더 세밀하고 풍성했다면 요즘엔 그 글이 ‘잘 읽히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듯하다. 세상이 복잡하니 글이라도 단순한 것을 더 추구한다, 라는 느낌이다. 잘 읽히는 글과 읽히지 않는 글을 규정하긴 힘들지만, 확실히 글을 읽다 보면 장문이든 단문이든 기술과 구조적으로는 리듬감, 즉 템포가 적당하고 맥락이 뚜렷할수록 잘 읽히는 듯하다. 들숨과 날숨처럼 스토리의 강약이 조화롭다고 한다면 적절한 비유일까? 어디까지나 주관이 많이 개입된 평가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장문의 글이 바둑 같다면 단문은  간단한 스도쿠(sudoku) 십자말풀이 같아 즐겁다. 의미를 숨길 수도, 드러낼 수도 있고,  배치하고 더하고 빼다 보면 운율이 제법  드러나 마침내 완성!  외칠  있어 좋다. 의도하는 대로 끝내  표현되지 않아 답답해 하다가 미완성인 채로 내보내는 단문도 적지 않다. 제목이 ‘미완성, 완성이 귀찮았던 게으른 거장의 작품과 같은 성취라고 한다면 너무 비약일까. 그래도 읽는 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나름 작가에게 즐거운 일인  같다. 누군가가   진정성 있게 살펴보다가, 이마를 ! 치며 ‘! 그런 의미였어?’라고 감탄한다면 극대화될 그런 즐거움.


Instagram @ke_nistry



#티-코스터


티-코스터 (tea coaster)는 참 좋아하는 소품 중 하나다. 없으면 없는 대로 크게 불편함 없지만, 테이블 위에 하나 정도 있으면 꼭 컵이 자리해 결로가 만드는 물방울을 무한대로 흡수하는 기특한 아이템이다. 청결과 편의를 위한 소품이지만, 그 너비가 손바닥만 해 디자인을 입히기도 좋다. 썼던 글을 입혀 코스터를 직접 제작해 지인에게 선물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이번 달 회사의 문화활동으로 뭘 할까 하다가, 스스로도 참 유용하게 사용했던 종이 코스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Instagram @ke_nistry


처음엔 글로만 구성하려 하다가 감각 있는 동료의 그림이 떠올랐다. 취지를 설명하고 그림을 하나 그려줄 것을 부탁하자 감사하게도 흔쾌히 수락해 바로 작업을 진행했다. 코스터 인쇄는 생각보다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아 회사에서도 ‘좋은 활동’이라고 지지해 주었지만, 직원이 참여해 직접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키울 공감이 값으로 따지기 힘들 정도로 귀하다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다.


동료와 수 차례의 콘셉트 회의를 거치고, 주말이란 귀한 휴식시간을 들여 완성된 그림을  받아 그 그림에 어울리는 글을 지었다. 그리고 어울리는 글씨체를 찾아서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손바닥만 한 코스터에 둘을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쉽지 않았지만 즐거운 과정이었다. 어찌 보면 문화 활동이고 또 다른 의미에선 자발적 재능기부에 해당하는데, 받는 이들의 즐거움과 기쁨을 생각하면 보람차기까지 하니 들인 비용 대비 이보다 더 좋은 활동이 있을까? 이 일련의 과정이 과연 ‘일’일까 아니면 ‘즐거운 유희’일까 모호했지만, 흐릿한 본질은 또렷한 과정으로 인해 그럴듯한 결과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거의 처음 해본 동료와의 콜라보 작품은, 비록 미완이라도 그 자체로 너무 예뻤다.



#처음 세상에 내보낼 때


잘 만든 작품을 처음 내보일 때 설레는 느낌이 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기도 한다. 웬만한 일엔 놀라지도 않는 무던해진 심장도 타인의 평가 전에는 왜 이렇게 주체를 못 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뇌가 시켜서 손이 쓴 것 같아? 그거 나 없이는 어림도 없어’라고 심장이 퉁퉁거리는 듯하다. 인쇄 전 초안이 완성돼 그림을 그린 동료에게 (당연히) 먼저 보여줬다. 너무 마음에 들고 예쁘다며 좋아한다. 이번엔 팀 동료에게 공유했다. 글이 감성적이고 그림도 예쁘다며 감탄했다. 이번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과거 회사의 동료들에게 공개했다.


“이번에 동료랑 만든 결과물이에요. 느낌 어때요?”


사실 그들에게 가장 큰 공감을 기대했던 이유는, 과거 우리가 이런 일을 즐기던 사내 동호회가 인연이 되어 만났고 디지털 사운드보단 미술관 옆 동물원을 더 좋아할 것 같은 그런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대는 누군가의 첫마디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말이 너무 긴듯한 느낌이네”


서른다섯자(字)의 시구와 무한대의 색 조합으로 이루어진 일러스트가 단 열한자로 가치 절하되는 마법을 목격했다. 다른 분이 말한다.


“언뜻 봐선 한 번에 파악이 되질 않네요”


아마도 ‘시적 허용’이 정말 허용되는 이름 있는 작가의 작품이 아니므로, ‘언뜻 봐서 파악이 될만한 글'이 아니면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것이 불편한 작가 명망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이름 있는 작가의 글이 난해한 것은 내 소양 부족 탓, 아마추어 작가의 잘 해석이 되지 않는 글은 작가 탓을 하곤 한다). 애초에 그림을 먼저 배치하고 그걸 채우는 ‘디자인적 요소’를 고려해 글자 수를 제한해 글을 적었고, 그럼에도 읽히는 운율과 함축된 의미로 보면 볼수록 조금씩 베일을 벗고 의도한 모습이 드러나는 그런 글을 쓰고자 했었다. 주제가 단순하니 글을 치장한 셈인데, 그 원문을 더 단순한 주어 술어 목적어 구조로 글을 비틀고 문제를 지적하는 대화방 사람들을 보며, 나름 재미있기도 했지만 고민도 됐다. ‘그 정도로 별로인가?’


그리고 다시 여러 번, 나와 동료가 함께 완성한 코스터 시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확실히 디자인 요소는 고칠 여지가 다시 보였다.




#글자를 배신하지 말 것


“첫 번째 글은 세 번 읽었어. 두 번째 글은 의미가 와닿아서 갤러리에 저장할 뻔했어. … 근데 첫 번째 글은 다섯 번 읽으니까 더 좋아졌어. 만일 사진 속 커피가 진짜 커피였다면, 첫 번째 커피의 잔향이 더 오래 기억될 것 같은 느낌이야”


단 몇 마디가 아니라 조금 더 길게 써서 보내온 친구의 이와 같은 의견은 처음 제작 의도가 그 목적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안도하게 했다. ‘잔향’이라는 표현도 좋았다. 동음이의어로부터 여러 번 읽으며 알게 될 글의 의미가 마치 여운이 남는 향기와 같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림에는 조금 더 단순한 글을 더했다. 차분한 색상에 다채로운 문양의 라떼아트와 어울리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래, 조금은 고집스럽게 원래 의도대로 완성해도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은 받아쓰기나 리포트가 아니니, 몇 마디 타인의 평가에 고치는 것보다는 그 것 그대로 보는이의 다양한 감상을 기대해보고자 했다.


‘작가가 문장의 리더라면, 그를 따르는 글자를 배신하지 말 것’.

Instagram @ke_nistry


#공감의 언어


“그런 콘셉트로 쓴 글이라면 여러 사람이 작가님의 의도대로 읽어준 것 아냐? 그렇다면 잘 안 읽혀서 별로라는 피드백에 기뻐했어야지!”


여러 부정적 의견에 고민하던 중에 친구가 해준 이 한마디는, 잠들어 마땅할 시간에 눈을 번쩍 뜨고 이 글을 적게 만드는 한 잔 레몬워터 같은 청량감을 주었다. 공유한 티-코스터 시안에 대한 어떤이의 ‘문장이 길다’거나 ‘잘 와닿지 않는다’는 비판이 어색했던 이유는, 그 글이 더 기술적이고 명확하게 적혀 빠른 이해를 돕게 하는 그런 의도로 쓰인 것이 아니며, 피드백과 수정을 목적으로 공유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런 금전적 보상 없이 참여한 동료와의 공동 작업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진 이 작품은 비평으로부터 ‘더 괜찮아질’ 여지는 있어도 틀이 바뀔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목적의 감상으로, 같은 말을 공감의 언어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as-is] 이건 문장이 좀 기네. 폰트도 눈에 안들어오고. 근데 전반적으로 느낌은 있네

[to-be] 오, 느낌 있는데? 그림과 글이 썩 잘 어울려. 근데 나한텐 좀 긴 느낌이야. 폰트도 좀 더 단순하게 바꿔보는게 어때?


앞 뒤 단어나 문장, 쉼표의 재 배치로 확연히 달라질 ‘글’과 같은 그런 형태로, 일상 속 혹은 업무중 소통 방법으로 괜찮아 보인다.



Instagram @ke_nistry



※이 글은 인사 플랫폼 원티드 인살롱에도 동일하게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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