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꽃핀 사내 소통 문화의 경험
한 회사에서 내부 소통 담당자로 일하며 겪었던, 동료들의 자발적 참여가 발전시킨 콘텐츠 기반 사내 소통 문화의 경험입니다.
우연이었을까? 그 시작이 강렬했기에, 조금 흐려졌어도 여전히 분명한 흔적으로 그림의 빈 공간을 채우며 첫 시작의 획을 보태주었던 그들과의 만남은.
우리가 사람이다 보니 보고, 듣고, 맡고, 만지면서 수집되는 모든 정보가 차곡차곡 심연 깊이 자리 잡게 되고, 잊히더라도 결국 내재화의 토대가 됨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문화라는 일을 하며 반복적인 단일 메시지로 캠페인을 하는 이유이고, 어떻게든 우리 동료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형 이벤트를 만드는 이유다. 하지만 이 일의 첫 난관은 바로, ‘어떻게 직원들을 납득시켜 참여하게끔 하는가’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난관 투성이의 내부 소통 직무를 처음 맡았던 그 시기에 그들을 만났다는 것은 어쩌면 어느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 '엄청난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행운'일지 모르겠다.
마케팅 소통 채널과 다르게 사내 소통(internal communication)을 위한 채널은 한정적이다. 채널이 귀한만큼 소통의 기회는 더 소중했기에, 매일 보내던 뉴스레터 서두에 여러 유형의 메시지를 적었다. 일방적인 정보성 메일이 소통의 기능도 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때때로 이 메시지에 동료들이 회신하곤 했다. 감사와 격려의 말도 있었지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자신의 견해를 담은 정성스러운 회신도 더러 있었다. 그날 뉴스레터에 담았던 메시지는 ‘반 자율’에 대한 것이었다.
‘반 자율’ 이란 말을 처음 사용해보니 ‘반 강제’와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중간 지점에서는 양 극단의 각 개념이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그러자 한 동료가 회신을 했다.
반 자율, 반 강제
중간 지점에 있으면 표현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Glass-is-half-empty, glass-is-half-full 느낌과 비슷한가 싶었는데,메일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empty와 full은 반대 개념이지만,자율과 강제는 항상 반대의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어떤 업무를 반 정도는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나머지 반에 대해서 자율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존 방식을 따른다 해서 그것이 꼭 ‘강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음…….. 뭔가 쓰니까 설명이 잘 안 되네요!
아무튼 중간 지점에서 극단의 개념이 의미 없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한 줄의 글이 양 끝을 잇는 사고, 고민, 소통의 교각이 된 순간이었다. 사실 이 동료로부터의 회신은 해당 글 이전에도 종종 있었다. 회의실 이름이 전 세계의 주요 도시명이었던 것에 착안해 도시가 주제인 음악을 연결 지어 소개하는 메시지에는 본인이 알고 있는 더 다양하고 많은 추천 음악 목록을 보내와 놀랐던 기억이다. 그 회신을 계기로, 각 층 회의실 테마였던 도시와 우주를 주제로 1,2편에 나눠 ‘음악은 리듬을 타고’라는 기획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내부 소통 활성화를 위해 늘 지향하던 양방향 소통을 직원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자연스럽게 실현했던 좋은 사례였다.
프로의 손길이 반드시 최상의 결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과거 마케터로 일하며 업체와 제작하던 회사의 오피셜 영상은 프로의 작업물임에도 늘 진정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전문가의 디렉팅, 무결점 편집, 그리고 좋은 화질과 음성이 더없이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너무 흔한 보편적인 기획이라는 점이 그랬을까? 빅 마켓보다 골목 시장을 빛나게 하는건 역시 그 곳 만의 수제품이 아닐까? 현직에서 문화 목적의 콘텐츠 제작을 직접 할일이 많았는데, 하면 할수록 공감 가는 콘텐츠는 기획의 문제이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진해져갔다. 그중에서도 직원이 직접 참여한 콘텐츠는 의미와 과정 모든 면에서 가장 좋았다.
하지만 앞선 사례처럼, 공식적 이메일에 정성스러운 회신을 한 동료와 같이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협조적인 동료를 만나는 행운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담당자는 대체로 바닥을 드러내는 소재와 저조한 직원들의 참여 때문에 고민이 많다. 섭외라는 공적 미션으로 인해 사적 믿음에 잠시 균열이 생기기도 한다. 일례로, 어느 날 동료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려는데 ‘혹시 이거 출연해달라는 뇌물?’이라고 물어 그렇지 않음을 손을 내저으며 부인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참여형 콘텐츠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그보다 더 우리 문화를 자연스럽게 내비치는 진정성 있는 콘텐츠 유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에는 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커피코너(Coffee Corner)’라는 비정례 이벤트가 있었다. 글로벌 주요 인사의 방한이나 새로운 임원의 부임 등을 기념해 마련되는 오프라인 소통행사 커피코너의 타이틀 속 ‘커피’는 다만 취지의 상징성만 남긴 흔적에 불과했다. 이름이야 어떻든,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커피코너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과 참여도는 높은 편이었다. 매 년 몇 차례 열리는 커피코너가 성공리에 진행되도록 인사팀과 홍보팀이 협업했고, 매 번 테마를 다르게 해 나름대로 신경 써서 행사를 준비했던 기억이다.
행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하며 쉬고 있는데, 한 동료가 말을 걸어온다.
“회사 커피 다 드셔 보셨어요?”
아메리카노와 라떼 정도라고 답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하며 재차 묻는다.
“머신에 다이얼 안 돌려 보셨어요?”
평소 커피의 쓴 맛보다는 그걸 부드럽게 가리는 풍미의 라떼를 선호해 회사 커피머신의 라떼 기능을 자주 이용했었다. 위생 관리와 우유 공급 등에 비용이 많이 듦에도 라떼가 가능한 고가의 커피머신을 들여놓은 것은 나름 회사의 자랑할만한 복지라는 생각도 했다. 하루는 아메리카노, 하루는 라떼, 또 하루는 카푸치노로 회사 커피 애호가로서 충분히 머신의 기능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동료와의 대화에서 머신에 더 많은 다른 메뉴 선택 기능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동료가 알려주는 대로 다이얼을 돌려보니, 이름 한 번은 들어봤거나 생전 처음 보는 커피 메뉴들이 더 있었다. ‘나만 모르고 있었나?’하는 생각에 몇몇 다른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그들도 대체로 모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안도 뒤에, 문득 이런 사소한 정보가 동료들의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원래 커피코너는 참 좋은 취지의 이벤트임에도 아무래도 호스트 대부분 회사 내에서 지위가 높은 인사다 보니 주제나 구성이 매우 자유롭진 않았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의 구성과 진행은 고급 원두를 내려 만든 미들 바디감의 아메리카노 같았다. 그래서 리스트레또나 플렛 화이트와 같은 다채로운 커피코너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많은 직원들이 모르고 있던, 다양한 커피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회사 커피머신의 사용법을 포함해, 회사 안팎의 흥미롭거나 유용한 주제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전하는 이 실험적 프로젝트의 이름을 ‘리얼 커피코너(Real Coffee-corner)’라고 정했다.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조력자가 필요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거나, 적어도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의지를 꺾지 않을 사람이어야 한다. 그 동안 이런 일들에 꾸준히 동참해준 메일 회신의 주인공에게 먼저 리얼 커피코너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회사 커피 머신의 다이얼을 돌리면 더 많은 커피 종류가 나오는데, 기능 소개도 할 겸 우리 몇 명이 하나씩 다 마셔보고 솔직하게 맛 평가를 해 보는 거 어때?”
별다른 대본 없이, 프리 토크 형식으로 진행할 다른 동료도 섭외를 부탁했다. 하루새 감독을 제외한 세 명의 출연자가 모였고, 카메라 테스트를 위한 첫 촬영이 시작됐다. 카메라 한 대와 우리 각자의 역할만 있을 뿐, 조명도, 스태프도, 그럴듯한 세트도 없는 회사 공간 그대로의, 그동안 없던 작은 라이브 카페가 금새 마련됐다.
이때 테스트 촬영을 위해 켜 둔 카메라에 기록된 태현(여자), 유진, 그리고 태현(남자)의 토크 과정은 그대로 원본 클립이 되었고, 편집을 통해 시리즈의 첫 번째 챕터로 공개되었다. 일일 바리스타로 커피를 종류별로 추출해 제공했던 유진과, 처음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진행의 남자 태현, 그리고 차분한 콘셉트의 여자 태현의 조화는 크림과 에스프레소가 적정 비율로 잘 어우러진 콘파냐*와도 같았다. 그들이 나눈 대화는 우리 일상의 소재였고, 화면 속 조금은 어색한 모습은 재미있는 버전의 일상 속 우리들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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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파냐(caffé con panna) - 에스프레소에 휘핑크림을 얹은 커피의 한 종류. 비엔나 커피.
이후엔 더 다양한 콘셉트로 촬영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리더를 초청한 토크를 진행하거나,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적 이슈에 유용한 대처방법을 전하는 정보성 콘텐츠도 기획했다. 특별한 탤런트를 가진 동료를 섭외해 자신의 취미를 공유하는 세션도 진행했고, 한국에 출장 중이던 독일 본사 직원을 섭외하기도 했다. 그렇게 리얼 커피코너는 더 다채로운 구성으로 여러 회차가 공개됐다. 이 과정 중 대의란 명분으로 귀한 시간을 내어준 멤버와 출연진들에게 감사함을 넘어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아마 대체로 즐기며 참여해준 그들이 있어 의미있는 소통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영상이 누적되며 참여하거나 응원하는 동료들이 더 많이 모였다. 그들과는 서로 바쁜 시기가 달라 일정을 조율해 만났고, 아이디어 회의를 겸해 식사나 티타임을 함께 하기도 했다. 재능 공유 등 여러 생산적인 세션에는 별도의 비용이 들었지만 모두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지속이 어렵겠다 생각도 들었다. 예산이 필요했다.
만드는 결과물이 회사 공공의 내부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이 일만을 위해 별도의 예산을 요청하는 것은 이미 시작된 회기(回期)와 기존 업무 범주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비 공식적 모임에서 쓰는 비용, 예를 들어 ‘캘리그래피’ 세션에 드는 재료비라거나, 퇴근 후 회의하며 함께 먹는 식사비 같은 소모적인 비용을 조달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료함을 타파하는 데 성공했으니, 유료로의 전환을 고민할 때였다.
동호회 설립 요건 첫 번째: 기존의 동호회와 활동이 중복되지 않을 것.
알아보니 회사에서는 마침 추가 동호회 설립이 가능했고, 우리 활동을 잘 소명하면 정식 동호회로 인정받아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활동에 일정 부분 비용 지원도 받고, 좀 더 공개적으로 홍보가 가능해 더 많은 동료들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HR에 있던 멤버의 도움을 받아 동호회 활동계획을 제출하고, 기존에 있던 문화 동호회와 우리는 무엇이 다른지 여러 차례의 소명을 거쳐 정식 동호회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나와 내 주위의 이야기를 모으거나 만드는 일을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하는 사내 동호회 <크리에이터스>는, 콘텐츠 생산자들과 이의 적극 소비층들이 모인 사내 소통 모임이었다.
크리에이터스는 첫 익선동 투어 스케치 영상을 시작으로, 캘리그래피 세션, 어반 스케치 세션, 스토리텔링 세션 모임을 이어가며 콘텐츠 생산을 지속했다. 개별 홈페이지도 만들어 문화 체험과 리뷰 콘텐츠를 쌓아갔고, 그중 일부는 사내 매거진에 소개됐다. 콘텐츠 안에 회사의 문화나 제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기도 했다. ‘우리가 서로를 모르면 누가 알까’라는 슬로건으로, 여러 동료를 섭외해 참여형 콘텐츠 제작을 이어갔다.
한 동료가 물었다.
"왜 일을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점심시간에도 해?"
주말에도 모여 문화 체험을 하고, 함께 즐기는 모습을 콘텐츠로 제작해 사내 소통채널에 공유하는 일을 사내 소통 담당자의 업무로 본다면 가질만한 의문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답하지 않았나 싶다.
“크리에이터스 활동을 일이라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그 결과물로 많은 직원들과 공감하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삶 속 관심사의 일부를 공유하는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제가 너무 꿈꾸던 회사예요!”
회사 안 작은 공간 하나를 미니 라이브러리로 꾸미고, 진열된 책마다 그걸 읽었던 동료들의 짧은 감상평을 꽂아두고, 방명록에 이런저런 서로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남기며 소통하는 그런 공간에 대한 상상을 들려주자 한 동료가 한 말이었다. 북 토크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동료 신디는, 무척 신나 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도 보탰다. 그렇게 여럿이 공감하며 더 커진 꿈으로부터, 이미 오래전 멈춘 리얼 커피코너의 시간이 떠올랐다. 역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과정엔 늘 '공감'이 있다.
동료가 이야기하는 ‘꿈꾸던 회사’를 위해 ‘컬처 라운지’란 밑그림을 그렸다. 최근엔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지적 감성적 성장을 함께하는 취지의 ‘북 토크’나, 전시회 등 문화활동을 함께하고 나눈 이야기를 스토리로 만드는 ‘컬처토크’등에 참여하는 동료들을 만나 역시 소소하지만 내외부에 좋은 문화를 알릴 콘텐츠 제작을 함께 하고 있다. 만드는 모든 콘텐츠는 사내 뉴스레터와 회사의 공식 채널을 통해 대내외 컬처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해당 콘텐츠는 ‘공유’로 재 확산되고, 다른 회사에서도 벤치마킹하는 등 컬처 브랜딩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치 크리에이터스의 리얼 커피코너와 같이, 여전히 고마운 동료들과 함께 참여형 콘텐츠로 문화를 쌓는 행운을 이어가고 있다.
리얼 커피코너 첫 챕터를 촬영할 때, 테스트 카메라에 보인 동료의 모습이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다. 지금은 그 신기한 모습이 애틋함으로, 또 그리움으로 번졌다. 영상 클립을 편집하며 웃다가 밤을 새운 경험은, 회사에서의 모든 의미 있는 순간을 기록해 추억으로 만들게 하려는 의지의 시작이었다. 의도한 기회에 의도치 않게 발견한 누군가의 탤런트, 정성, 또는 적극성은 직무 발전의 방향을 바꿨다.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 중 일부는 조금 먼 곳에서, 또 일부는 여전히 서로가 보이는 곳에서 삶이란 길을 각자 걷고 있다.
처음 리얼 커피코너에 참여하고, 또 여러 편의 시리즈에 참여한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던 날, 그곳에서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고자 인근 카페에 모여 송별모임 겸 몇 컷의 영상 촬영을 했다. 그리고 그 영상 소스는 잘 보관했다가 편집해, 연말 우리 동호회의 송년모임에서 함께 감상했다.
누군가의 관심을, 누군가의 정성을, 또 누군가의 재능을 지나쳤다면 그냥 조금 특이한 어느 동료의 이야기였을 이 모든 경험이, 영상속 BGM <모든 날, 모든 순간>의 가사처럼 ‘모든 순간을 눈부시게 비추는’ 꿈과 같은 한 장면으로 남게 돼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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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포스팅 원티드 인살롱 에도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