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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Aug 08. 2022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조직문화를 꽃피우는 '글'에 대한 이야기

글을 짓고 미소를 쓴다

문장이 뭔가 어색하다. 동사를 전후 바꿔 써보니,

글을 쓰고 미소를 짓는다

이제 자연스럽게 읽힌다. 표정에는 (인상을 제외하곤) 쓴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글’에는 쓰다와 짓다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 어차피 의미는 통하지만 글을 쓰는 것과 짓는 것은 미세한 의미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집을 짓는 것과 같이, 글을 완성하기까지 소재를 찾고, 연결을 하고, 구조를 짜고, 구성을 손보며 여러 번 고쳐 써야 자연스러운 표정과 같은 전후 맥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란 어디에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생겨난다. 그렇지만 좋은 조직문화에는 약간의 밑그림과 정성이 필요하다. 문화 자산을 좀 더 정돈하고, 개선할 것은 개선하고, 이벤트를 열거나 보상을 강화해 업무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게 하고, 좋은 인재를 남기고 늘리는 것이 대체로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회사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며 ‘글’을 먼저 소재로 꺼낸 것은, 글과 문화가 서로 연관이 없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은 문화를 드러내거나, 문화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또 좋은 글을 짓는 과정은, 연결과 공감이라는 좋은 문화의 생성 과정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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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운다


문화를 꽃피운다 같이, 문화에는 '피운다' 표현도 쓴다. 아마도  과정에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인 듯하다. 사무실에서 씨앗을 심어 꽃을 피워본 적이 있는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놔둬도  자란다는 해바라기였는데, 제대로 지지대를 세워주지 않아 이리저리 프레츨처럼 눕고 휘어져 뒤늦게 바로 세우려다가 줄기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어찌어찌 남은 해바라기의 화분을 갈아주고, 흙을 채우고, 겉흙이 마르면 물을 주며 일광의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주기도 했더니 비로소 작은 꽃이 피었다. 하지만 관심을 조금 거두자 다시 시들시들 . 생존력 강한 해바라기도 그런데, 복잡 미묘한  조직문화라는 것은  꽃을 피우기가 오죽 힘들까 싶다. 꽃은 오래가지 않지만 뿌리와 줄기가 튼튼하다면 다시 핀다. 아마도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 비유하는 이유는, 그렇게 불릴만한 문화란 이전에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뿌리부터 튼튼한 그런 문화를 가리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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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라 불릴만한 것들


어느 회사든 문화는 존재한다. 팀에서 생일을 축하해주는 문화, 부서에서 자율적으로 하는 월별 이벤트 문화, 피플팀에서 주도하는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의 패밀리데이(반나절 근무) 문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티타임 문화, 책 돌려 읽고 후기를 나누는 북 토크 문화, 동호회 문화, 입사자를 환영하는 대표의 손편지와 웰컴 키트 문화, 퇴사자를 위한 롤링페이퍼 문화 등 다양하다. 꼭 규정으로 정하지 않아도 의식으로 여겨지는 문화는 어디에든 존재하며, 이는 사업의 성쇠(盛衰)나 기업 리더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같은 공간에 사람이 모이므로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만들려는 것은 사실 문화 그 자체라기보다 ‘문화라 부르고 내세울만한 것들’이 아닐지.


그냥 생겨나는 모호한 모습의 문화 말고, 협업이나 생산성 같은 가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나쁜 문화 말고, 회사의 진정한 문화라 불릴만한 것을 피울 가치가 있는 꽃이라 한다면, 그 꽃의 모습은 썩 예뻐야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이 함께 피운 것도 아닌 일종의 형식적이고 강제된 '문화'에 대해, 이후 그 대상으로부터 좋은 기억과 평가를 바라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현재 함께하는 동료들 뿐 아니라, 오래전 함께였던 동료도 ‘나쁘지 않았어’라고 기억하게 되는 게 진정 좋은 문화라면 말이다.


그런 의문을 갖고 문화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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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을 신화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구전(口傳)이라고 한다. 구전되는 이야기는 대체로 흥미롭거나 놀랍거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다.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는 대체로 흥미로워하는 청자의 눈빛으로부터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이야기꾼들은 원래의 사실에 살을 붙여 풍선처럼 부풀리기도 한다. 과하면 거짓이지만, 적당하면 스토리가 된다. 이런 이야기를 짓는 이야기꾼을 현대에선 ‘스토리텔러’라고 더 멋지게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구전되는 것들 중 기록되어 남겨지는 것들이 있다. 좋은 문장력으로 써 내려간 흥미로운 작품들인데, 나중에 사실에 근거했는지의 여부가 또 다른 이야깃거리의 주제가 되는 만큼, 글로 남겨진 이야기들은 구전보다 더 멀리, 더 깊이, 더 오래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으며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 별 것 아니었을지 모를 이야깃거리가 신화가 되는 과정이다.


회사의 경우 대체로 입가심으로 먹고 잊히는 스낵과 같은, 쉽고 빠르게 회자되는 이야기들이 있다면 그것은 미담(美談)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와 만난 자리에서 나누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의 주제가 주로 무엇일지 생각해보면 명확하다. 요즘 사람들은 비평이나 분풀이가 아니면, 대체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쓰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의도가 다분할지라도 회사에서 주도하는 스토리텔링이다. 마케팅에선 이를 브랜드 저널리즘(brand journalism), 즉 미디어 채널을 통한 소통의 방법론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느린 롱-텀 마케팅이므로, 대체로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효율)를 따진다면 그 시작이 쉽지 않은 방법이다. 그래서 대체로 업력이 오래됐거나 자본에 여유가 있는 기업이 그 일을 ‘제대로’ 한다. 그렇게 축적된 이야기들은 회사와 함께 존속하고, 회사가 변화하거나 사라지더라도 남겨질 것이다. 함께 하거나, 함께 했거나, 함께 할 사람들에게 기억될 '문화'라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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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저널리즘


이처럼 어느 시대든 어느 집단이든 가지고 있었을 어떤 분위기나 생활양식, 또는 구성원의 인식과 의식이 문(文, 글)화되어 남겨진다는 것은, 그 무형의 것들이 누군가로부터 ‘문화’라 불리고 ‘전해지는’ 일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문화 된다는 것은, 애써 잘 가꾼 무형의 문화를 전후 맥락 있는 좋은 문장으로 드러내며 그것을 더 성숙하게(보이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업체 더피알은 브랜드 저널리즘의 목적을 ‘브랜드의 다양한 채널이 미디어만큼의 신뢰도를 갖게 되는 것’이라 설명한다.


브랜드 저널리즘은 상품이나 브랜드 마케팅 영역에만 쓰이는 방법론이 아니다. 인사 영역, 특히 조직문화의 영역에서도 깊이 고민해볼 만한 주제이니다. 조직문화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을 이야기한다면, 그 소재는 회사이고, 대상은 전현직 조직 구성원과 잠재적 미래 인재가 될 것이다. 따라서 문화 이미지 제고는 기업의 지속경영 동력인 셈이다. 좋은 조직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계의 사업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은 꼭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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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내보내는 것이다


글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의 시작은 노출이므로, 담당자의 컴퓨터에서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 그러므로 글로 남긴다는 것은 사실 남기는 것이 아니고 채널로의 방류가 목적인 셈이다. 옆자리 김동료와 그의 최근 성과, 그리고 노하우를 주 재료로 삼고, 그의 기가 막힌 보컬리스트 자질과 동호회 밴드의 공연 소식을 양념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됐다면, 그 글을 다듬어 회사 소식지에 올리고, 사내 블로그에 게재하고, 그 요약을 SNS에 해시태그와 함께 컬처 브랜딩과 채용마케팅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 이야기가 누적된다면 사내 뉴스레터도 고려해볼 만하다. 꾸준히 발간된다면 회사의 문화를 남기고 알리는 효과가 점점 커져 글이 온전한 문화 성숙과 전파의 도구가 될 것이다. 또, 동료들이 우리 회사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 스스로 참여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면 이는 내부 소통에 의한 문화 발전과 확산으로 이어지므로, 문화가 스토리의 일부가 되기도, 스토리가 곧 문화가 되기도 할 것이다. 글이 일방적 소통이 아닌 양방향성 교감의 주체가 되는 셈이다.


물론 글 말고도 문화를 표현하고 남길 수 있는 콘텐츠의 형태는 다양하다. 영상, 카드 뉴스, 소셜 포스트, 온오프라인 배너 등이 있다. 하지만 모두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므로, 탄탄하게 짜인 스토리 기반 글이 있다면 여러 형태로의 변형은 쉬울 것이다. 반대로 스토리가 빈약한 콘텐츠는 소시지 없는 핫도그 같아 뭔가 아쉬울 것이므로, 글이 모든 기획의 기본이며 시작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편하다.


사내 뉴스레터 발췌 (특정인 초상권 활용 동의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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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


가수 신용재는 <가수가 된 이유>라는 곡에서, 본인이 가수가 된 이유가 ‘옛 연인이 자신을 알아봐 주었으면 해서’라고 노래한다. 듣다 보면 가사가 그냥 꾸며낸 이야기 같지 않은 애절함이 느껴진다. ‘참… 가수 되는 이유가 별게 다 있네’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다가, 문득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뭐지?’ 하고 생각해봤다.


회사에서 글은 주로 마케팅이라는 직무에 필요해 써왔다. 테크니컬 라이팅(technical writing), 블로그, 단문과 홍보카피 등 글의 모습도 다양했다.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마케팅의 전 영역을 두루 훑어야 하는 B2B 업계에서 마케터로 일하며 조금씩 알게 된 많은 것들 중 특히 관심을 가지고 개발했던 ‘콘텐츠’가 조직문화 업무와 큰 교차영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오를 만큼 자타가 '좋은 문화를 가졌다'라고 평가하는 어느 회사에 재직할 때, 커뮤니케이션 파트에서 내부 소통 업무를 담당했던 나는 이메일과 뉴스레터, 그리고 사내 채널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한 글을 주로 썼다. 회사의 문화, 회사의 성과, 동료들에 관한 공식적이거나 사소한 내용이 주제였다. 담당자로써 글을 쓰기 이전부터 그 회사엔 멋진 문화가 있었으므로, 본인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다듬어 좀 더 볼드한 윤곽을 그려내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우리가 하는 다양한 문화 활동들을 인식하고 동참하는 직원들이 많아졌으며, 외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고, 급기야 퇴사자로부터 “우리 회사가 참 좋은 회사였다는 걸 글을 통해 새삼 알았다”는 인사를 건네받기도 했다. 그만큼 글은 직무를 막론하고 늘 필요한 도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래서 글을 ‘더 신경 써서’ 쓰려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아니 언제나 고민한다. 어떤 문화가 좋은 문화일까, 어떤 글이 그 문화를 잘 담고 그려낼까 등에 대해서.


… 이 몇 분짜리 노래가
별거 아닌 가사가
니 귓가에 니 마음속에 울려 퍼지기를
미치도록 기도해 제발 니가 듣기를 …

<가수가 된 이유> 중


문화에서 콘텐츠의 효과는 그것을 단순히 일로만 대하는 방식에선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체로 나와 내 주위의 이야기에 관심과 감동을 쉽게 받는다. 공감의 힘이다. 글로부터 알리고, 참여를 이끌고, 다시 그로부터 생산된 글이 여럿의 마음에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문화를 다루는 콘텐츠 저작자의 마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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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무언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방법이나 노하우를 다루고 있지 않다. 너무 원론적이라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쓸 글의 전제로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앞으로 할 이야기는, 마케터로 일하며 필요했던 마케팅적 관점과 생각, 그리고 이에 기반한 여러 조직문화 경험들에 관한 것들이다. 마케팅만 하던 본인이 우연히 조직문화 파트에서 일을 해보니 알 수 있었던 것은, 마케팅이 직무분야가 아닌 분들이 디자인과 문구, 홍보 방식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사팀에서 일하는 지인들이 자주 하는 문의는 네이밍이나 문구, 홈페이지 개발의 절차와 방법, 디자인, 이벤트, 소셜 홍보 방법 등이며, 업무의 대상만 달라졌지 마케팅에서 고민하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지금도 원래 그 일을 해오지 않았던 많은 인사담당 동료들의 고군분투에 동참하고 있다.



※이 글은 원티드 인살롱 기고만장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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