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깊이
고전(古典)은 오랜 작품이다. 하지만 오래되었다고 모두 고전이 되진 않는다. 잊히지 않고 남겨진 것들이 고전이 된다. 작품의 시간이 물과 같다면, 고전은 가라앉지 않고 순환되며, 부패되지 않고 변화와 숙성을 거친 것들이다. 그러니 고전은 깊이가 남다르다. 고전은 다양한 형태로 재 생산되고, 문화로써 현대 작품들의 영감이 된다. 고전은 마르지 않는 이야기의 원천(源泉)이자 바다인 셈이다.
누구든 학창 시절 읽었을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미궁에 빠지다'란 표현의 어원이 등장한다. '미궁(迷宮, labyrinthos)'은 그리스신화 속 크레타 왕 미노스가 반인반수(半人半獸) 미노타우루스를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에게 명해 만든 미로다. 워낙 복잡해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기로 유명했다. 그걸 설계한 다이달로스조차 아들 이카로스와 미궁에 갇히자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여 날아서 탈출했을 정도다. 엮인 실타래를 풀며 들어간 테세우스만이 미노타우루스를 물리치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카로스는 태양 너무 가까이 나는 욕심에 밀랍이 녹아 바다로 떨어져 죽게 된다. 미궁은 신화 속 많은 이야기로 타계, 지혜, 절제의 교훈을 전한다. 고전은 이처럼 사람의 언어와 인식 깊숙이 자리 잡아 문화가 된다.
최근 인기 있는 브런치 스토리들을 보다가 상위 열 편의 글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주제는 이혼, 결혼, 퇴사라는 것이 인상깊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들에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는 셈이다. 요즘 시대 공감의 언어는 쉽게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는 우리들 속사정이 아닐까 싶었다. 순위의 글들 중 편하고 예쁜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브런치의 글들 중 얼마나 많은 작품이 고전이 될까? 고전이 되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풍요 속 상류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영화로도 제작된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도 아름다운 주제는 아니다. 그래도 고전이라 불린다. 현대 문학인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신화와 비교하는 것은 클래식과 뉴에이지 음악 중 무엇이 더 낫냐는 토론만큼이나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것일지 모르지만, 대체로 고전이 되는 것들은 글이든 음악이든 문화로써 다른 작품들에 영감과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쿠키 같은 편한 주제의 단편 글이라도 그 문학적 깊이가 남다르다면 오래 남겨질 수 있을 것이다. 깊이의 열쇠는 의외로 서두름 없이, 신화 속 테세우스의 실타래와 같은 관찰력과 인내심으로 노력의 시간을 들인 작가가 만드는 결과가 아닐지.
"신들은 인간들을 질투해. 왜냐면 신들은 마지막 순간이란 게 없거든"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스는 '인간들이 죽기 때문에 그 삶이 고귀하며, 그걸 신은 부러워하고 질투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글은 오래 지나도 남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과, 손과 삶을 거치며 해석되고, 더해지고, 발전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고전의 깊이는 몇 마디 말이나 몇 줄 글에 담기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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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 Unsplash의Parrish Free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