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거니 걷거니 잰걸음으로 가더라도 반드시 멈춰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다. 날씨가 좋아 공원 길로 돌아가거나, 시간이 빠듯해 서둘러 갈 때도 있는 출근길의 이야기다.
의무로 인한 의지의 걸음 끝에 전철역에 도착해 마주하게 되는 건 노란 선이다. 멈추고 가는 것이 디지털 신호라면, 그 사이 멈춤과 기다림은 비정형의 스페이서처럼 세상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지지직 거리며 가장 깨끗한 MC의 목소리를 찾는 주파수 조절기, 다이얼로 조절하는 볼륨, 원하는 지점으로 되감기를 하려면 '그 언저리 어딘가'가 최선이던 카세트테이프 같달까, 디지털 혁명을 살고 첨단의 제품을 다루면서도 일터에 오고 가는 일은 베베꼬인 선이 있는 전화기와 수화기를 닮았다. 스마트폰의 디지털 자판으로 글을 적는 일과 다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양 극단의 선택만을 강요받아 차오른 숨 돌릴 새도 없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끌리듯 나아가곤 한다.
집을 나와 길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전철역에 다다른다. 오는 길 수두룩했던 벚꽃 만개한 나무들과 달리, 지하철 역사에 드리워진 건 서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어두운 표정과 역사의 그늘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의 기다림은 스마트폰을 열어 방금 한 생각을 글로 옮기기 좋은 시간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타야 할 열차의 반대방향 승강장에 서서 글을 쓰고 있다. 글에 빠져 출근길을 망각해도 정도껏 해야지, 라며 서둘러 다시 반대편으로 건너가 보지만 방금 막 떠난 열차가 한가득 사람들을 싣고 가 승강장은 텅 비어있다. 어렸던 그 시절, 꿈나라에서 또 다른 여행을 하느라 현실 여행에서 정류장 몇 개를 지나치던 일이 비일비재해 하교시간이면 어머니가 정류장에 체포(?)하러 나와 기다리고 계셨던 마을버스 정류장이 생각났다.
실수로 조금 더 연장된 시간에 글을 좀 더 적고 있다 보니 오래전 매일 아침 생각의 풍요를 누리던 그때가 떠오른다. 사내 소통 담당자로써도 요구된 적 없는 그 일을 하게 된 것은 돌이켜보면 늘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직원들에게 매일 아침 보내는 정형화된 뉴스레터에 다른 인트로 문구를 적기 시작했고, 그 일이 반복되자 동료들이 가끔 감사의 회신을 하곤 했다. 처음으로 회사의 업무 중 공감의 카타르시스를 느겼다. 길든 짧은 매일 글을 창작해야 하므로, 소재가 마르지 않도록 주로 출퇴근길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어뒀다가 활용했다. 그러니 그렇게 시작한 일 덕분에 출퇴근길은 글 될 일상의 여행길이었던 셈이다.
오늘 출근길에도 쉼 표가 여럿이다. 그리고 짧은 여정 뒤 언젠가 마침표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마침표가 반드시 이야기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듯이, 그렇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일상의 이어짐은 계속될 것이다.
또 한번 글로 여행이 된 출근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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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