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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May 18. 2023

떠난 이가 남긴 공간

회사에 좋은 소식이 들렸다. 지금 회사가 임대 중인 현재의 공간에서 인근의 신축 건물로 이전이 결정된 것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규모만 단순히 커지는 것이 아니라 해당 건물의 지분을 가지고 입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회사의 가치도 자산 규모에 따라 오를 테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회사에 합류한 지 오래지 않은 직원 입장에서도 좋은 소식인데, 대표를 비롯해 이 회사를 만들고 키운 역사의 산 증인들의 감회는 오죽할까. 그래서 오늘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했다. 또 다른 기념해야 할 다른 일, 바로 어느 직원의 퇴사 소식과 함께.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기업 가치가 커지는 몇 가지 변곡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옥 이전이 아닐까 싶다. 규모를 키운 더 나은 환경으로의 이전은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의 홍보 소재다. 따라서 투자 유치에 성공하거나 단기 매출상황이 좋아지면 회사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요지에 사무실을 얻는다. 강남역, 삼성역, 종각 등, 전통적으로 성공한 밴처기업들은 이 지역들의 임대료 시세를 올려왔다. 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공간에 쏟는 셈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감당이 가능하다면 좋은 위치의 공간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 통념이다. 회사의 위치를 보고 입사를 결정하는 이도 있으니 조직의 운영과 확장, 그리고 이미지 측면에서 모두 유리한 입지라는 것은 확실히 존재한다.


스타트업의 또 다른 변곡점 중 하나는 인적 팽창이다. 명확히 어느 시점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인력이 늘고 조직 인사가 부산히 돌아가는 시기가 있다. 이 시기 기존 직원들도 다양한 이유로 퇴사한다. 이번에 퇴사하는 직원은 3년 차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스타트업의 시계는 빨라서 3년 정도면 구루1)나 다름없다. 그들은 사업 초기부터 함께했고, 몇 번의 고비를 버텨 지금의 결과를 만드는데 크게 일조한다. 기존 직원과 새로 합류하는 경력 직원들의 입장차는 그렇게 형성된다. 심한 경우, 그들이 입장차를 좁혀 어우러지지 못한 채 내부 갈등이 된다. 다행히 현 직장은 성장의 속도도 신중하게 조절하는 편이라 적당한 보폭으로 무리 없이 걷는다. 동행하기 좋은 속도다.


'고마워요. 당신이 만든 토대에서 잘 꽃 피워 볼게요'


끝내 전하지는 못했지만, 새 공간으로의 이전 소식에 퇴사를 앞둔 직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1) 구루(guru, गुरु): 스승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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