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니스트리 May 16. 2023

태평양의 밍크고래

문화 속 과시와 품격

"이거 진품이야?"


언젠가 5세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아이가 명품 브랜드 옷을 입은 걸 보고 부모에게 물었다. 중고지만 진품이란다. 중고라도 가격은 웬만한 아동복 브랜드의 새 제품보다 몇 곱절 비쌀 테니, 그걸 알뜰한 소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유독 영유아들을 위한 명품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여러 언론을 통해 들린다. 그런 기사를 볼 때면 경기침체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다. 부쩍 오른 물가에 소비를 좀 줄여야지 하는 고민을 하는 직장인으로선, 외식은 줄여도 아이에게 명품 옷은 입히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법무법인 태평양(이후, '태평양')에는 다양한 예술작품이 있다. 고가의 그림부터 오랜 시간의 가치가 더해진 가구까지, 오피스 인테리어의 일부인 예술작품들은 외부인의 시각에선 사치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태평양의 예술작품은 부의 유희일까, 방문객을 위한 감성적 배려일까? 대회의실에 걸린 브라이언트 오스틴의 작품 '밍크고래'가 대표적인 태평양의 예술작품들에는, '생각이 복잡할 의뢰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식을 드리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고, 태평양은 설명한다.


'Beautiful Minkewhale' by Bryant Austin (studiocosmos.com)


무엇이 하나는 사치로, 다른 하나는 품격으로 만들까? 어린아이에게 명품을 입히는 부모의 사례와 태평양의 예술작품 사례로부터, 기업의 이미지 제고와 원활환 채용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이는 스타트업의 문화 브랜딩 속 사치와 품격의 차이가 궁금했다.





웰컴키트(welcome kit)는 최근 조직문화에서 인기 있는 소재다. 많은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자사의 브랜드를 입힌 다양하고 참신한 구성의 키트를 만든다. 키트 상자에는 보통 사무용품, 캐릭터, 생활용품 등이 담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웰컴키트 중에는 화려해 눈길은 가더라도 딱히 쓸모는 없어보이는 제품도 더러 있다. 주변에 따르면, 웰컴키트에 포함된 제품 중 볼펜, 다이어리, 캡슐커피 세트, 슬리퍼 등 실제 사무실에서 소모적으로 쓰이는 것들을 선호했다. 반대로, 최대한 비용을 줄여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들로 구색만 맞춰 구성하는 경우에는 '안 받느니만 못하다'는 평가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웰컴키트 전쟁' (한겨레 기사 인용)


조직문화 브랜딩과 내부 소통을 위해 하는 이벤트도 마찬가지다. 경험상, 돈을 많이 들였다고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돈은 적게 들였어도 기획 자체가 참신했다는 평가의 이벤트도 있었다. 전 직원을 모으며 터무니없이 적은 예산만을 승인하는 대표도, '돈 아끼지 말라'라는 대표도 겪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쓴 이벤트가 늘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던 것을 보면, 모든 기획의 성패가 돈 문제는 아닌 듯하다.


기업은 대체로 내부 의욕(팀빌딩) 고취, 외부로부터의 인식, 브랜드 가치의 향상 등 여러 이유로 문화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영인은 그 회사가 내 외부 모두로부터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로 인정받고 그것이 회사의 가치로 돌아오길 바란다. 가치 있는 문화가 닮은 모습은 왠지, 한쪽으로 기울어져 균형을 잃은 듯 보이는 어린아이의 명품 옷이 아닌 태평양의 밍크고래와 비슷할 것 같다.



웰컴킷 속 '첫걸음을 응원하는 양말' by Meta (사진: Fernanda Terra at Pinterest)


절약에 대한 집착보다 '소비를 하지 않음'이 더 현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절약이 과시보다는 나을 것이다. 사업의 명운에 따라 쉽게 잊혀질 무분별한 문화 기획들이 길어야 한두해 입힐 어린아이의 명품 옷과 같다면, 태평양의 그림과 비슷한 의미로 좀 더 신경 쓴 사무실의 공간과 소품이 더 합리적인 문화 투자가 아닐까? 


태평양의 예술작품은 의뢰인을 향한 배려, 내부 직원의 힐링, 그리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연결한다.

태평양의 공간을 채우는 예술작품에 대해 알게된 건 어느 기자의 취재를 접하면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최근 그걸 모티브로 주제를 설정했다는 것도 알게됐다. 작가들의 의식세계를 거쳐 이를 인지하기까지, 태평양의 밍크고래는 오로지 내부 직원과 방문객을 위한 품격 있는 문화적 구성요소로 존재했을 것이다. 회사가 신중하게 선택한 문화 자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값어치가 올라갈테니,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결국 존재하지 않게 될 기업들의 일회성 활동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명품 아동복에만 진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며 의도치 않게 드러나는 것들도 그렇다. 눈에 잘 띄진 않아도 모두가 그 존재를 귀히 여기는 고래들 처럼.




참고:

 - "우리 딸, '구찌' 입어요"… 명품 아동복에 수백만 원 쓰는 엄빠들, 왜냐고요? (서울경제)

 - 태평양에는 우영우의 고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서울경제)


표지 이미지: Minkewhale, sea, sky by AI(Canva)

매거진의 이전글 진화의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