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일찍 집을 나서는데, 바닥에 흩뿌려진 건 굵은소금 같기도, 버스라뜨린 진주 알갱이 같기도 했어요. 급하게 택시를 타느라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는데, 이동하는 차 창문에 투둑 하면서 부딪히는 걸 보며 하늘에서 무언가 내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은 길이 얼 것을 대비해 미리 누군가 뿌려둔 염화칼슘이거나, 방금 전 창문을 두드린 우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우박을 본 것은 참 오랜만이에요. 그 첫 기억은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었을까, … 아마도 우박이 그 이후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지 않았겠지만, 아마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걸 맞은 머리가 따끔따끔 아팠던 첫 경험의 기억보다 특별하게 여겨지진 않아서일 거예요. 아무튼 오늘 우박은 기억에 남을까요? 곧 진눈깨비로 바뀌어 해가 뜬 다음 길을 나선 이들은 몰랐을 온도차가 빚은 결과물을요.
우박은 상하 구름층의 온도차가 만든다고 해요. 주로는 기온차가 큰 봄과 가을에 생긴다고 하지만, 오늘은 추운 겨울 아침인데도 눈이 아닌 우박이 내린 걸 보면 잠깐 하늘이 착각을 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하늘은 기온이 낮으니 수증기로부터 생긴 얼음 결정(結晶)이 떠다니는데, 그게 자라 무거워지면 보통은 떨어지며 녹아 비가 되지만 지상의 기온이 낮으면 진눈깨비가 되거나 우박이 된데요. 굵은 우박은 단순히 그렇게 내리지 않고, 강한 상승기류를 만나 하늘로 더 높이 솟구치며 얼음결정이 더 자라게 되고, 비로소 굵은 우박이 되어 재해로까지 이어지는 거래요. 오늘 내린 건 큰 재해 수준의 우박까진 아니고, 그냥 귀여운 알갱이정도인 것 같아요.
요즘 자주 느끼는 소통의 결로, 혹은 따끔거릴 정도로 큰 우박과 같은 불편함은 아마 서로가 느끼는 온도차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아요. 내 느낌에, 그들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고 느끼는 나의 온도가 불편하고 나 또한 그렇다고 느끼는 거죠. 온도차가 커질수록 수증기가 달라붙어 결정이 더 커지게 되고, 그게 내릴 지상의 온도도 냉랭하고 낮으면 큰 우박이 내리는 것처럼,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너무 크면 상대적으로 온도차를 더 크게 느끼게 되고 실체 없는 우박이나 결로를 관계 속에서 만들어내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냉랭하다면 잠시 시간을 주고, 다시 따뜻해지면 거기에 맞춰 대화를 시도하여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관계 속 불편함을 줄이는 방법인 것 같아요.
우리는, 잠시의 착오로 우박을 만들더라도, 시간이 지나 계절이 바뀌면 그걸 녹여 양분으로 삼는 자연처럼 하기엔 너무도 참을성이 적고 어리석은 존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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